한인섭 서울대 교수, 법률가로서의 행적 조명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나라를 찾고 독립을 얻기까지는 어느 한 곳 거처할 곳이 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거지와 같은 사람."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1887∼1964)는 자신이 '가인'이란 아호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그는 58세에 광복을 맞은 뒤에도 이 아호를 버리지 않았다. 남북 분단, 빈곤한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방황할 것을 결심했다.
독립운동가이자 법률가였고, 민족주의자이면서 민주주의자였던 김병로의 삶을 조명한 책 '가인 김병로'가 출간됐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0여 년에 걸친 자료 조사와 집필 끝에 내놓은 두꺼운 역작이자 노작이다.
한 교수는 2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책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썼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 현대사가 워낙 부침이 심해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살아간 사람이 많지 않다"며 "관행이나 물욕을 따르지 않고, 권력에도 위축되지 않는 인간상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들이 가인의 삶을 접한 뒤 희망을 버리지 않고 노력과 열정을 품으면 좋겠다"며 "김병로 선생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다"고 털어놨다.
한 교수는 이 책에서 김병로라는 인물에 대해 과도한 상찬을 늘어놓기보다는 당대에 만들어진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법률가로서의 행적을 고증했다. 그가 제목에 '평전'을 붙이지 않은 이유다.
가인의 생애는 일반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올곧음과 청렴함, 그 자체였다. 김병로는 항일 변론의 최전선에 서서 각처를 돌아다니며 변호 활동을 펼친 탓에 '조선 좌경변호사'로 낙인찍혔고, 민족의 분열보다는 통합을 위해 줄곧 노력했다.
또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가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정권 장악 시도를 견제했다.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쓴소리하기를 마다치 않은 가인은 스스로에게는 매우 엄격했다. 공직자로서 사적 이익을 탐하지 않아 '지공무사'(至公無私)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한 교수는 책에서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인의 대법원장 퇴임 직후 삶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정리하는 한편, '입법가' 김병로를 부각하는 데도 중점을 뒀다. 가인은 형법, 형사소송법, 민법의 골격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문을 직접 작성했다. 대한민국 법률의 뿌리이자 '법의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청렴 강직했던 가인은 가난을 불평하지 않았어요. 가난을 벗 삼았지만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정도를 지켜나갔죠. 그래서 그의 삶이 지금까지 큰 울림을 주는 것 아닐까요."
박영사. 934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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