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 인사검증 배제항목은 늘리고 검증잣대는 현실화
위장전입은 시기와 목적, 음주운전은 횟수 등이 기준
부동산 투기→불법 재산증식, 논문 표절→연구 부정으로 확대
현 내각 인사에 적용하는 경우 사실상 낙마인사 없어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청와대가 22일에 발표한 고위공직후보자 인사검증 기준은 공직 기용 배제 항목은 늘리되 항목마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검증잣대를 현실화한 것이 특징이다.
병역 기피·부동산 투기·세금 탈루·위장전입·논문 표절 등 기존의 5대 인사 기준이 원칙만 강조하고 구체적인 적용 원칙이 없어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는 지적을 수용해 이런 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춘추관 브리핑 후 일문일답에서 "현재 기준을 적용하다 보면 너무 많은 자의적인 면에 의해 문제가 생기는 부분을 많이 경험했다"면서 "부족할지 모르나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고자 고민했다"고 말했다.
현실적 기준을 마련한 대표적인 항목이 위장전입이다.
기존에는 사유와 관계없이 위장전입을 한 이력이 있으면 문제가 제기됐다.
자녀의 학교 배정을 위해 자녀의 주소지를 자신의 모교 근처로 옮겼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의 사례에 비판이 제기됐을 때 청와대는 투기 목적의 위장전입이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다.
위장전입 시기도 문제였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청문회 당시 위장전입 이력이 불거져 문제가 됐으나 청와대는 인사청문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전의 일이어서 결격 사유는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구체화한 새 기준을 적용하면 사회적으로 용인할 만한 위장전입이었는지를 다투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위장전입과 관련해 '2005년 7월 이후 부동산 투기 또는 자녀의 선호학교 배정 등을 위한 목적으로 2회 이상 위장전입을 한 경우' 임용을 원천배제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병역 기피도 '본인 또는 직계비속이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경우' 등으로, 세금 탈루도 '본인 또는 배우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포탈하거나 조세의 환급, 공제를 받아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경우' 등으로 구체화했다.
새로운 인사 기준으로 추가된 음주운전 항목과 성 관련 범죄도 마찬가지다.
두 항목은 현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고위공직자의 인사검증 기준에 추가할 것을 검토했던 바도 있다.
최근 10년 이내에 음주 운전을 2회 이상 하거나 최근 10년 내에 음주 운전을 1회 한 경우라도 단속 경찰관 등에게 신분을 허위로 진술했을 경우 임용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음주운전과 함께 새로 추가된 성 관련 범죄의 경우 '국가 등의 성희롱 예방 의무가 법제화된 96년 7월 이후 성 관련 범죄로 처벌받은 사실이 있는 등 중대한 성 비위 사실이 확인된 경우'라는 구체적 기준을 마련했다.
횟수나 인사원칙의 적용시점을 구체화해 그 기준에 미치지 않으면 관용을 바랄 수 있다는 점에서 검증잣대가 완화됐다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청와대는 예외적인 적용 사례를 둬서 이를 보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각 원칙의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각각의 비리와 관련해 고의성, 상습성, 중대성 등이 있는 경우에는 임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외교·안보분야 인사는 병역 기피 원칙을, 재정·세제·산업·법무 분야 인사는 불법적 재산증식 원칙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하는 등의 추가적인 장치도 마련했다.
기존의 5대 비리 중 '부동산 투기'를 주식·금융거래 등이 포함된 '불법적 자산증식'으로, '논문 표절'은 연구비 횡령 등이 포함된 '연구 부정'으로 그 개념을 확대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와대의 인사검증 기준에 부실한 면이 있다는 평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발표된 기준을 적용한다 해도 논란 끝에 현 정부 1기 내각에 입성한 장관 중 낙마할 인사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음주운전 은폐 의혹이 일었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나 '허위 혼인신고' 논란이 인 끝에 자진해 사퇴했던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정도가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박성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 사유 중 하나였던 종교관이나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내정자의 '황우석 사태' 연루 이력 등은 새 기준으로도 걸러내기 어려운 대목이다.
성 관련 범죄 항목의 경우도 96년 7월에 저지른 성범죄에는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횟수 기준을 넘지 않는다 해도 고의성, 상습성, 중대성이 있다면 원천적으로 해당 인사를 배제할 것"이라면서 새 인사 기준이 느슨하다는 지적을 반박했다.
다른 고위관계자는 "이번에 발표된 기준은 원천배제 기준"이라며 "이것은 최소한의 기준이고 이 외에도 많은 기준을 갖고 검증하겠다"고 강조했다.
kj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