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잠이라도 제대로 잤으면"…추위에 떨고 여진에 깜짝 놀라고
이재민 800여명 흥해실내체육관 사생활 보호 위한 칸막이 절실
속옷, 비누, 수건 등 생필품 없어…대피소 떠나는 사람도 늘어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여기서 단체로 생활하다가 보니 부족한 점이야 한두 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도록 조치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17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포항 지진 이재민 이봉엽(65·여)씨는 부족한 점이 많다며 하소연했다.
이씨는 종이상자를 바닥에 깔고 담요를 하나 두른 채 지인들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15일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뒤 이씨처럼 집이 파손된 이재민 1천421명은 11곳에서 지낸다.
흥해실내체육관 800명, 대도중학교 300명, 항도초등학교 강당 100명, 기쁨의교회 69명, 들꽃마을 35명, 읍면동사무소 21명 등이다.
친척이나 지인 집에 가서 지내거나 대구·부산이나 도내 다른 도시에 있는 자녀 집에 간 사람도 상당수다.
특히 가장 많은 이재민이 모인 흥해실내체육관은 이재민,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이 섞여 상당히 소란스러운 편이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잠을 잤고 성인들은 멍하게 앉아 있거나 누워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다.
이날 오전 1시 17분께 포항시 북구 북북서쪽 6㎞ 지점에서 규모 2.1 지진이 났을 때 흥해실내체육관이 조금 흔들렸다.
잠을 자다가도 놀란 주민이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는 일이 발생했다.
당장 집에서 간단한 옷 정도만 챙겨 나온 이재민들이 단체 생활로 불편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소한 사생활을 보장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일부 이재민 대피소에는 종이와 천으로 만든 칸막이를 설치해 놓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경기 의정부시는 2015년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 이재민을 위한 대피소에도 텐트를 마련해 어느 정도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었다.
다만 텐트는 어두워 전등을 일일이 켜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다른 이재민(64)도 "아프고 불안하니 집으로 가는 것이 가장 낫다"며 "안전진단 때문에 갈 수 없다면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밥이나 간식 등은 여러 단체가 나와 도와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해결한다.
그러나 단체 생활을 하는 이재민에게 필요한 것은 밥 외에도 한둘이 아니다.
얇은 스티로폼이나 종이상자로는 당장 밤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제대로 막을 수 없어 추위에 떨고 있다.
제대로 씻을 수 없어 지저분한 상태로 지내는 일도 많다.
김옥순(65)씨는 "씻는 것도 완전히 포기했다"며 "지진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소화가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비누, 수건, 속옷, 양말 등 생필품을 지급하고 고장 난 화장실을 수리하며 내부 소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체 생활에 따른 불편함 때문에 대피소를 떠나는 사람도 속속 늘고 있다.
로사리에씨 가족은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를 떠나 자신 집인 흥해읍 대성아파트로 갔다.
로사리에씨는 "지진 때문에 아직 불안하나 아이들이 대피소 생활을 불편해 집으로 간다"고 말했다.
한 60대 주민은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조카가 펜션을 운영하는 데 거기서 지내라고 해서 들어갈까 싶다"고 했다.
외벽이 많이 부서진 흥해읍 대성아파트에서는 이날도 짐을 빼내려는 주민 발길이 이어졌다.
한 주민은 트럭을 몰고 와서 짐을 대부분 빼내는 모습이었다.
이 주민은 "집은 무너질 위험이 있으니 계속 놔둘 수 없어 짐을 빼내 논에 두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sds1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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