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美 워싱턴에서 25만명이 '제정신' 시위 벌인 까닭은
조지프 히스 "'정신 나간' 정치가 퍼지는 세상…계몽주의 2.0 선언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010년 가을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몰에 25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자유나 평등, 전쟁 반대, 군대 지지 등이 아니라 바로 '제정신'이었다.
정치풍자 프로그램 '데일리쇼' 진행자인 존 스튜어트가 기획한 '제정신 회복을 위한 집회'는 미국 정치 논의가 좀 더 이성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는 자리였다. 신간 '계몽주의 2.0'(이마 펴냄) 저자인 캐나다 출신의 학자 조지프 히스는 이 집회를 주목했다. "서구사회에서 이성이 대규모 정치 저항의 주제가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래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기묘한 집회는 지난 20여 년간 미국 정치문화에 일어난 변화상을 반영한다.
저자는 현재 정치 문화가 이념이나 철학, 토론이 아니라 엄청난 속도와 과잉 정보,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뉴스, 감정에 호소하는 메시지에 지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념이나 진영을 가리지 않고 유권자 감정에 호소해 선거에서 이기는 현실에서 합리적 사고가 설 자리는 없다. 사람들이 개인적인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도 이성이나 논리 대신 감정이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반합리주의 조류를 퍼뜨리는 언론, 광고, 기업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일궈낼 수 없다. 저자가 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근대 계몽주의를 업그레이드한 '계몽주의 2.0'을 제안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 사이의 타협과 신뢰, 집합행동이 필요하다.
"이성 쇠락의 경향을 되돌리는 것은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여서 어느 한 개인이 달성할 수는 없다. 이 일은 많은 인간 정신의 역량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합리적 정치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기 위한 집합행동이 필요하다."
책의 결론은 '느린 정치' 선언이다. 속도의 노예에서 벗어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숙고를 지켜내면서 유대와 교류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승진 옮김. 이마. 512쪽. 2만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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