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숨겨진 두 예술가 이야기
릴케·로댕의 관계 다룬 레이철 코벳 저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강력한 대가를 찾는 사람들은 말이나 정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본보기를, 위대함을 만드는 뜨거운 가슴과 손을 찾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뜨거운 찬사는 1902년 독일 청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의 첫 만남을 앞두고 보낸 편지 일부다.
당시 릴케는 27살 무명의 시인이었고, 62살의 로댕은 연로한 거장이었다. 세대도, 국적도 다르며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예술가가 얼마나 긴밀히 얽혀 있었는지를 담은 책이 신간 '나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뮤진트리 펴냄)다.
저자인 미국 작가 레이철 코벳은 릴케가 한때 로댕 아래에서 일했다는 한 토막의 정보를 접한 뒤 두 사람을 추적했다.
1840년 파리에서 나고 자란 로댕은 고대 조각상 베끼기에 급급했던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는 자연사 박물관, 마(馬)시장, 동물원 등을 돌아다녔고 외부의 움직임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로부터 35년 뒤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난 릴케는 1896년 독일 뮌헨대에 입학하면서 자신을 옥죄던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다른 시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던 두 예술가의 이야기는 1902년 릴케가 로댕을 다루는 논문 집필 의뢰를 받으면서 드디어 한 지점에서 만난다.
"일하라, 또 일하라." 로댕은 비서가 된 릴케에게 예술을 향해 정진할 것을 끊임없이 주문했다. 로댕이 장르도, 언어도 다른 릴케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조각예술과 철학은 방황하던 무명의 작가가 탈출구를 찾도록 도왔다. 저자가 "로댕이 산이라면, 릴케는 그 산을 에워싼 안개였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 무렵 릴케가 소년 시절 다닌 사관학교 생도 하나가 편지를 보내왔다. 릴케는 '거장의 옷을 빌려' 생도에게 답장을 보낸다. 그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릴케의 명작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숱하게 인용되며 "역사상 가장 교양있는 자기 계발서"로 인정되는 이 작품에는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형상을 발견하려 했던 릴케의 고민과 사색이 담겨 있다.
책은 서로 너무 다른 성향의 두 예술가가 갈라섰다가 다시 만나고, 또 갈등을 빚는 과정을 촘촘하게 기술한다. 예술에 정진하라고 말했던 로댕이 만년에는 욕망과 세속에 굴복하는 모습은 릴케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저자는 일반에도 잘 알려진 릴케의 '장미 가시' 죽음에서도 로댕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1926년 가시에 손가락을 찔린 릴케는 패혈증으로 숨졌다. 죽음의 두려움이 로댕을 얼마나 볼품없게 만들었는지 지켜봤던 릴케는 질병의 욕됨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믿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두 사람의 삶과 우정, 예술, 창작뿐 아니라 폴 세잔, 앙리 마티스, 카미유 클로델, 클라라 베스트호프,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등 당대를 장식했던 수많은 예술가가 등장해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한다.
원제 You Must Change Your Life. 404쪽. 1만8천 원.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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