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규 "체육교사 꿈꿨던 소년, '범죄도시'로 인생작 만났죠"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아직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이 잘 안 납니다."
지난달 31일 광화문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배우 진선규(40)는 영화 '범죄도시'가 600만명 돌파를 앞둔 소감을 묻자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니까 믿기지 않는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범죄도시'에서 흑룡파 조직의 보스 장첸(윤계상)의 오른팔인 위성락 역을 맡았다.
선한 눈빛과 사람 좋은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영화 속 모습과 180도 달랐다. 삭발한 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두르는 위성락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계속 선한 역할만 하다가 처음으로 악역 연기에 도전했어요. 연기하면서 '저도 이렇게 강한 사람의 눈빛을 가질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죠. 제 안의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범죄도시'는 제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자, 인생작입니다."
그는 이번 작품에 오디션을 통해 뽑혔다. "처음 오디션을 봤을 때 강윤성 감독님의 눈에는 제가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어요. '다음에 다른 영화에서 보자'고 말씀하셨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다행히 한 번 더 기회를 주셔서 최선을 다해 오디션을 봤고, 최종 캐스팅됐을 때는 미친 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범죄도시'에서 자신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윤계상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계상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을 많이 나눠줬어요. 영화의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그 덕분에 모든 배역이 살아날 수 있었죠."
진선규는 대학로에서는 이미 소문난 연기파 배우다. 윤계상이 그를 연기 스승으로 꼽을 정도다. 2004년 아카펠라 연극 '겨울공주 평강이야기'를 시작으로 '더 마스크'(2006), '칠수와 만수'(2007), '김종욱 찾기'(2012), '리걸리 블론드'(2012) 등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누비며 입지를 다졌다.
안방극장에서도 2015년 방송된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의 혁명동지 남은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영화에서는 '사냥'(2016)에서 중현역으로 처음으로 '이름'을 가진 배역을 맡으면서 충무로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그가 올해 출연한 영화만 4편에 이른다. 지난 5월 개봉한 '특별시민'에서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의 운전사 길수역을 맡아 최민식이 싸주는 대형 상추쌈을 우적우적 받아먹는 연기로 짧은 분량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불한당'에서는 부패한 교도계장역으로 나와 재호(설경구)의 따귀 세례를 받았고, '남한산성'에서는 충직한 장수 이두갑으로 출연, 억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매 작품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준다.
"제가 연기를 잘해서라기보다 그 캐릭터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연기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연극을 할 때도 제 옆에 있던 관객이 '감동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정작 제가 누구인지는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배우로서 짜릿한 면은 있죠. 무대나 스크린 속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구나 하는 그런 느낌요."
그래서인지 '범죄도시'가 흥행 대박을 터뜨렸지만, 아직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며 웃었다. "그래도 '범죄도시' 이전에는 어떤 배역의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다면, 이제는 시나리오를 주면서 '이 역할 해볼래?'라고 제의가 들어와요. 그것만 해도 저에게는 엄청난 변화죠."
지난 14년간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지만, 학창시절 꿈은 체육 교사였다고 한다.
"제 말투가 조곤조곤하고, 실실 잘 웃다 보니까 '힘센' 급우들이 저를 괴롭혔어요. 그래서 이렇게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체육관에 다니면서 태권도와 합기도, 절권도까지 닥치는 대로 운동을 했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것처럼 타이어를 묶어놓고 발차기도 했어요. 그렇게 운동을 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고, 소문이 날 정도로 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체육 교사를 꿈꿨죠."
그런 그가 연기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은 고3 때다. 고향인 경남 진해의 작은 극단에 친구 따라 놀러 갔다가 삼삼오오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 뒤부터는 극단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고3 여름방학 때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강남의 대형 갈빗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연기학원에 다녔다. 비록 두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된 식당 아르바이트와 연기학원을 병행하는 일은 19살 소년에게 벅찬 일이었다.
"진해로 돌아가기 전 남산 위에 올라가서 눈물을 삼키면서 결심했죠. 꼭 다시 서울에 와서 성공하겠다고…"
이후 진해에 있던 극단의 도움으로 3개월간의 짧은 연기수업을 받은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합격, 본격적이 연기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만들어 연극공연을 해왔다.
그렇다면 그는 남산에서 다짐했던 꿈을 이뤘을까.
"글쎄요. 저는 원래 연기를 잘 못 하는 배우였어요. 그러다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고, 10여 년이 지나면서 이제야 연극계에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알려졌죠.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