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국감 후 정기국회, 예산·입법심의는 제대로 하기를
(서울=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국회 국정감사가 31일 막을 내린다. 시작 전부터 적폐청산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실제 국감에서도 정책과 무관한 공방과 주도권 다툼으로 일관하다시피 했다. 정책과 민생을 먼저 챙겨야 할 국감장에서 의원들의 고성과 삿대질, 막말과 호통치기, 무더기 자료신청과 증인채택 같은 구태가 어김없이 재연됐다. 시민단체인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은 "밤샘 국감을 해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시간을 단축해 국감을 일찍 종료한 사례는 오점"이라며 "교문위의 경우 36개 기관을 하루에 감사했고, 12시간 국감을 하는 동안 14개 기관은 한 차례도 질문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폐청산과 무능 심판 논란에 함몰돼 깊이 있는 논의를 하지 못했다"면서 "여야의 공수만 바뀐 채 과거 국감과 판박이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대학 학점을 본떠 올해 국감에 'C- '를 줬다.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의 보궐이사 선임에 반발해 국감을 보이콧했던 자유한국당이 국감 종료를 하루 앞두고 나흘 만에 복귀했지만, 이날도 여야 공방 속에 정회 소동이 계속됐다. 유신헌법에서 폐지됐다가 1987년 개헌 때 부활한 국회 국정감사는 외국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제도인데 안타깝게도 매년 낮은 성적표를 받고 있다. 불과 20일 동안 700여 개가 피감기관을 봐야 하는 현재 방식을 연중 상시 국감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해야 할 듯하다.
국회는 내달 1일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듣는 것을 시작으로 예산안 심사에 착수한다. 총 429조 원에 달하는 내년 예산안을 놓고 정부·여당은 민생·개혁 예산을 빠짐없이 관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복지 포퓰리즘 예산'이라며 대폭의 '칼질'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국회 본연의 기능인 입법전쟁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안은 7천500여 건에 이른다. 정부가 추진 중인 100대 국정과제 관련 법안만 600여 건이라고 한다. 예산 부수 법안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큰 세법 개정안과 방송법 및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등을 놓고 여야 간 충돌이 우려된다. 여기에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진행해야 한다. 내달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도 8일로 예정돼 있다. 어느 때보다 많은 현안이 국회에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남은 정기국회만이라도 당리당략을 떠나 민생과 정책을 중심으로 임해야 한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선 특히 공무원 증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 최저임금 인상 등을 놓고 치열한 격돌이 예상된다. 내년뿐 아니라 장기간 우리 경제와 정부 재정, 근로자의 삶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인 만큼 철저한 검증과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 계류 법률안 중에는 비교적 관심을 덜 받고 있지만, 민생과 직결된 안건들이 많다. 성범죄자의 취업제한 기간을 차등화한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도 그런 경우다. 헌법재판소가 작년 3월 이 법 56조의 일부 내용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 여성가족부가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현재 법사위에 묶여 있다. 성범죄자들이 어린이집에 취업해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던 헌법재판소장 임기 문제도 국회에 계류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처리해 매듭지어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정기국회가 40여 일 남았는데, 7천500여 건의 자는 법안을 깨우는 시간이 돼야 한다"면서 "금쪽같은 11월에 국민을 섬기는 노력을 열심히 하자"고 4당 원내대표에게 당부했다. 국감에서 까먹은 점수를 남은 기간 예산안과 법안 심의 과정에서 만회할 수 있도록 의원들이 자세를 바꿔 분발하기 바란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