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정통성과 권위 담은 성물…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덕종 어보 '재제작품' 논란 딛고 등재…500여 년간 제작된 669점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어보(御寶)는 왕조의 영원한 지속성을 상징하는 물품이고, 어책(御冊)은 왕실의 정통성과 신성성을 부여한 성물(聖物)이다."
문화재청은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보는 금·은·옥 재질의 의례용 도장이다. 왕과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릴 때나 왕비·세자·세자빈을 책봉할 때 만들었다. 어책은 세자·세자빈 책봉과 비·빈의 직위 하사 시에 대나무나 옥에 새긴 교서를 뜻한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어보와 어책은 각각 331점, 338점이며, 1411년부터 1928년 사이에 제작됐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나라였고, 유교는 효(孝)와 조상 숭배를 중시했다. 왕가에서 전해오는 어보와 어책은 기록물로서의 가치는 물론 종교적 의미까지 지닌 유물이었다.
조선왕조가 협의나 지명이 아닌 세습을 통해 왕위를 넘겨줬다는 점에서도 어보와 어책은 중요했다. 세자나 세손으로 책봉돼 어보와 어책을 받으면 왕권을 계승할 인물이라는 사실을 공인받은 셈이었다.
또 왕과 왕비에게는 죽은 뒤에 붙이는 호인 묘호(廟號)나 시호(諡號)가 정해지면 또다시 어보와 어책이 봉안됐다. 이러한 어보와 어책은 조선의 신전이라 할 수 있는 종묘에 신주와 함께 보관됐다.
아울러 어보와 어책에는 제작 시기의 독특한 예술성이 반영됐다. 이러한 사실은 문구 내용, 문장 형식, 글씨체, 재료, 장식물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500년 이상 어보와 어책을 제작해 봉헌한 사례는 조선이 유일무이하다"며 "어보와 어책은 왕실의 정치적 안정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고, 당대의 문화와 예술이 깃든 유물이어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은 지난 8월 불거진 '재제작품' 논란을 딛고 세계기록유산이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문화재청은 세계기록유산 신청 대상에 포함된 덕종 어보와 예종 어보, 예종비 장순왕후 어보, 예종계비 안순왕후 어보 등 4점이 15세기 유물이 아니라 1924년 다시 제작한 물품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 어보들이 모조품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으나, 문화재청은 정식 절차를 거쳐 제작됐다는 점을 들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가 이러한 소동을 인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전체를 평가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려대 등이 소장하고 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