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장군'된 이라크 총리, 중동 열강돌며 광폭 외교
'두 마리 잡기 식' 광폭 외교 성패에 중동 정세 영향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의 광폭 외교가 눈길을 끈다.
이라크는 중동의 주요 국가면서도 지난 3년간 이슬람국가(IS) 사태로 주변국에 도움받는 처지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이라크 정부군을 주력으로 IS 격퇴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움츠러들었던 정상 외교를 재개하려는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마치 승전 뒤 '개선장군'의 행보를 보는 듯하다. 마침 분리·독립을 시도했던 쿠르드자치정부(KRG)에서 25일 새벽 사실상 항복 문서를 받은 터다.
KRG의 분리·독립운동을 군사 작전으로 진압한 것도 이런 자신감의 일단이다.
알아바디 총리는 25일 터키와 이란을 정상방문하기 위해 바그다드를 떠났다.
21∼23일 단 2박 3일 만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요르단 등 아랍 수니파 3개국을 연쇄 방문한 뒤 23일 밤 귀국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을 만난 지 이틀만이다.
알아바디 총리가 이렇게 부지런히 중동 내 주요 '플레이어'를 만나는 것은 그만큼 이라크를 둘러싼 상황이 급변한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급한 불'인 IS 사태가 끝나가면서 이라크를 둘러싼 주변 열강의 파워 게임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주류 수니 아랍권, 이들과 연대한 미국 진영은 재건을 시작되는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라크 정부가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인 데다 IS 격퇴전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직접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가 정부군만큼 활약한 터라 이라크와 이란의 관계가 더 긴밀해졌다.
이란과 이라크는 종파적으로도 같고, 국경을 맞댄 가장 가까운 인접국이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24일 내각 회의에서 "사우디는 이라크의 통합과 안정을 지지한다"면서 "사우디와 이라크가 이번에 구성한 실무협력위원회는 양국의 공동 이익을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리적으로 중동의 한복판이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2위 산유국인 이라크의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란은 자신에 대한 적대적 공세를 높이는 미국, 사우디 진영에 '시아파 벨트'를 강화하는 방법으로 대응하려 한다. 시아파 벨트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진다.
턱밑에 있는 이라크에 친미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이란으로선 매우 곤란해진다.
주변 열강의 파워게임에 자칫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는 만큼 알아바디 총리는 '줄타기 외교'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이다.
사우디를 방문한 직후 이란을 방문하고, 쿠르드족 대응에 이해관계가 맞는 다른 열강 터키를 신속히 찾은 것은 이런 의도를 대변한다.
자신이 22일 사우디에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동안 이브라힘 알자파리 외무장관을 러시아에 보내 협력을 다졌다.
그러면서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를 철수시키라는 틸러슨 장관의 압작을 거절함으로써 이란 쪽으로도 무게를 실었다.
이라크 정부가 시도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의 성패는 향후 중동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이라크가 사우디-이란으로 대표되는 중동 패권경쟁을 완충할 수도 있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처럼 주변 열강이 주도권을 놓고 충돌하는 '전장'이 될 수 있어서다.
향후 이라크 정세가 불행히도 후자로 전개되면 이라크는 다시 한 번 이 혼란을 틈탄 '제2의 IS'가 자라는 배양토가 될 공산이 크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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