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높인 필리핀…미·중·러·호주 '너도나도' 군사지원
두테르테 대통령, 친미노선 탈피 '줄타기 외교' 효과
중국, 아세안과 합동훈련 등 관계증진 모색…트럼프는 '글쎄'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올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의장국인 필리핀이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아세안 관련 국방장관 회의를 주최하면서 실속을 톡톡히 챙겼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추종반군 때문에 골치를 앓는 필리핀은 이번 회의를 강대국들로부터 군사지원을 얻어내는 무대로 십분 활용했다. 강대국들은 동남아에서 외교·안보 입지를 확대하려고 앞다퉈 필리핀에 손을 내밀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24일 오후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를 마친 각국 장관들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중국과 러시아, 미국, 호주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필리핀 남부 마라위 시에서 벌인 IS 추종반군 토벌 작전 때 중국과 러시아는 무기를 지원해주고, 미국과 호주는 군사작전에 필요한 정보 제공과 함께 자문을 해준 것을 거론했다.
필리핀의 대테러전을 경쟁적으로 지원한 이들 국가는 추가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25일 필리핀에 군용 소총 5천 정과 탄약 100만 발, 군용트럭 20대를 공식 기부하는 행사를 한다. 이들 군사장비를 실은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군함 3척은 지난 20일 필리핀 마닐라 항에 입항했다.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장관과 러시아 방산제품 수출입 중계회사 '로스오보론엑스포르트'의 알렉산드르 미헤예프 사장은 24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제 휴대용 대전차로켓발사기 'RPG-7B'의 필리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필리핀에 대한 러시아의 첫 군사원조와 양국의 첫 무기거래가 거의 동시에 이뤄진 것이다.
로렌자나 장관은 "중국이 술루 해에 투입할 고속정 4척을 필리핀에 기부할 계획으로, 현재 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술루 해는 필리핀 남부 해상으로 IS 추종반군이 선박과 선원 납치를 일삼는 곳이다. 자오젠화(趙鑑華) 주필리핀 중국대사는 연내 고속정을 인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국은 지난 6월에 이어 이달 초에도 소총과 탄약 등을 필리핀에 기부했다. 5개월간 지속한 필리핀 정부군과 IS 추종반군의 교전으로 폐허가 된 마라위 시 재건을 위해 300만 달러(34억 원) 규모의 건설장비도 전달했다.
호주는 필리핀군의 시가전과 대테러전 훈련을 지원한다.
머리스 페인 호주 국방장관은 24일 필리핀군의 이런 훈련을 위해 호주군 교관 약 80명을 파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호주는 필리핀군의 IS 세력 소탕전에 이미 P-3 오리온 정찰기 2대를 지원했다.
이번에 필리핀을 방문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필리핀이 테러범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필리핀군이 마라위 시에서 IS 추종반군을 소탕한 것을 축하하고 군사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은 지난 6월 필리핀군에 소총과 기관총 등 소형화기 수백 정에 이어 7월에는 세스나 208B 정찰기 2대와 1천여 발의 2.75인치 로켓을 IS 세력 토벌용으로 제공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작년 6월 말 취임과 함께 친미 외교노선 탈피를 선언하자 중국과 러시아가 그 틈을 타 경제·군사 협력을 내세워 필리핀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반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고리로 관계 복원에 애쓰는 모습이다.
중국과 아세안이 처음으로 양측 해군의 합동훈련을 추진하고 있어 그 결과도 주목된다.
이 훈련이 성사되면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겠지만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놓고 중국과 대립하는 미국, 일본, 호주가 중국과 아세안의 관계 증진에 촉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아시아 순방의 마지막 행선지인 필리핀을 방문할 때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이미 친중 성향이 짙어진 아세안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관심이다.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24일자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EAS 정상회의를 참석하지 않고 하루 전날 필리핀을 떠난다"며 "이는 그 지역 내 미국의 지도력에 의문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아시아 순방의 전반적 목표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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