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리커창 '애매한' 위상…총리엔 유임하나 경제실권은 '글쎄'
'시코노믹스' 주도는 어려우나, 금융위기 대비 책임 맡을 듯
리코노믹스→시코노믹스, 시·리 체제→시·왕 체제로 '굴곡'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한때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함께 정권 동반자로서 '시·리 체제'로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딴 '리코노믹스(리커창+이코노믹스)'라는 말을 낳았다.
그러나 작년 말 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8기 6중전회) 때 시 주석에 '핵심' 칭호가 부여되자, 리 총리를 시 주석과 병렬로 두는 경우는 아례 사라졌다. 리코노믹스 대신 '시코노믹스(시진핑+이코노믹스)에 넘겨줬다.
'시·리 체제'라는 말도 자취를 감췄다. 중국 공산당 서열은 5위이지만 실세였던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시진핑을 병렬로 한 '시·왕 체제'로 넘어갔다.
중국 국무원(정부)을 대표하며 경제정책을 이끌어온 서열 2위의 리커창 자리는 현재로선 애매하다.
그럼에도 리커창 총리는 25일 열리는 19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통해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에 유임하며 총리 자리도 지킬 것이 확실시된다. 그의 퇴임을 거론하는 분석가나 외신은 한 곳도 없다.
리 총리의 영향력이 그동안 시 주석과 왕 서기에 의해 상대적으로 절하됐지만 계파간 역학구조에 따라 그의 2인자로서 지위는 여전히 탄탄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안후이(安徽)성 딩위안(定遠)현을 고향으로 둔 리커창은 안후이성 명문인 허페이(合肥) 8중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문화대혁명 말엽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에 참여해 3년간 농민 생활을 했다.
문혁 종료와 함께 대학 입시가 부활하자 베이징대 법학과에 들어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활동을 한 것이 정치입문의 배경이 됐다. 1983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였던 후진타오(胡錦濤)와 만나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동향의 선후배 관계다.
리커창은 43세에 허난(河南)성 대리성장 겸 부서기로 임명돼 이듬해 최연소 성장이 됐다. 후진타오의 후견으로 2004년 랴오닝(遼寧)성 서기로 옮겨 정치실적을 닦았다.
후 주석과의 깊은 인연을 바탕으로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진입, 상무부총리에 오르며 후계 지도자로 낙점된 뒤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총리에 올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시 주석과 리 총리의 관계는 곧 시진핑과 후진타오와의 정치연맹, 공청단의 미래와도 직결된다. 리커창 총리의 앞날은 아울러 한국 경제와 깊숙이 얽힌 중국 경제의 미래와도 연결돼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리 총리의 유임설을 전하면서 "리커창은 시 주석에게 일종의 보완재" 역할을 한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이 내성적이고 안정 지향적인데 반해 리 총리는 호탕한 성격에 발전을 중시하는 편이어서 서로 다른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것이다.영국 경제정보 분석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도 지난달 중국 지도부가 대외적으로 안정적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리 총리의 10년 임기를 마무리짓도록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리 총리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지만 시 주석과 달리 특정 계파와 이념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어 제거할 경우 정국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EIU는 주목했다.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시 서기에 이어 리 총리까지 내칠 경우 이들을 내세운 후진타오 계열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집권 1기에는 반부패를 통해 당과 군내 권력을 공고화하는데 주력했지만 향후 5년은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 경제에 초점을 둘 수 밖에 없다는 상황논리도 존재한다.
특히 부채 급증에 따른 금융위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시 주석으로선 집권 2기 기간에 경제·금융 분야에서 위기가 나타나면 이에 대처하고 책임질 인물이 필요하다. 당의 관례를 깨고 총리를 바꿀 경우 당내 충격이 지나치게 클 뿐만 아니라 총리를 교체한 시 주석에게 책임이 몰릴 수도 있다.
실제 그간 리 총리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많았다. 지난 2014년부터 리 총리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설과 함께 19차 당대회에서 리펑(李鵬) 전 총리의 전례를 따라 상무위원에 유임하되 총리직을 떠나 전인대 상무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다녔다.
심지어 지난 8월초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기간에도 웨이신(微信·위챗)에서는 "총경리(總經理·사장)가 연임에 실패하고 대해(大海)로 교체될 것"이라는 음어가 유행했다. 19차 당대회에서 왕양(汪洋) 부총리가 리커창을 대신해 총리를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이는 리 총리의 정책방침과 경제성과에 대한 시 주석의 의구심이 바탕이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 증시 폭락사태에 이어 리 총리의 국유기업 개혁, 자유무역지대 건설 정책 등은 점차 주변화됐다.
리 총리가 전력 추진한 '간정방권'(簡政放權·조직 간소화와 권한의 하부 이양)이 지방정부로부터 공공연한 저항을 받으면서 사실상 폐기됐다.
급기야 시 주석이 마르크스주의와 권력집중을 강조하면서 공급측면 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경제정책 전면에 섰다.
시 주석은 그러나 경제관의 불일치에도 리 총리가 군말없이 '시진핑 핵심'을 추종하는 태도에 신임을 보내면서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리커창을 총리직에 유임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최근에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
실제 리 총리는 시 주석의 19차 당대회 업무보고 직후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거론하며 '시진핑 사상'의 당장 삽입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리 총리의 유임과 함께 시 주석의 경제 브레인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부총리로 승진해 함께 경제정책을 주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EIU는 리 총리가 여전히 명목상으로 경제를 이끌되 류허, 궈수칭(郭樹淸)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 장차오량(蔣超良) 후베이성 서기 등이 새로운 경제팀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시 주석 주도의 '시코노믹스' 팀이 경제정책을 주도하게 되더라도 리 총리가 산업가치 사슬을 고도화하는 '중국제조 2025 이니셔티브' 등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기업들은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리 총리가 경제정책에서 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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