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자오러지 '다크호스' 부상한 까닭…"시진핑 숭배 앞장"
시진핑 부친 묘역, 마오쩌둥 버금가는 규모로 조성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조직부장이 최대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데는 그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숭배에 앞장선 덕분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그가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의 후임으로 '반부패 사정의 총사령관'이 될 것이라고 잇따라 보도했다.
23일 홍콩 빈과일보에 따르면 자오러지 부장의 부상에는 그의 조부인 자오서우산(趙壽山)의 연줄이 우선 작용했다.
자오서우산은 1936년 공산당 토벌에만 몰두하던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를 시안(西安)에서 납치해 항일전쟁을 위한 국공합작(國共合作)에 동의토록 한 시안사변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당시 국민당 소속 사단장이었던 자오서우산은 이후 공산당에 투항해 고위 장성이 됐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칭하이(靑海)성 주석과 산시(陝西)성 성장 등을 역임했다.
자오서우산은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와도 서북 지역에서 함께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덕분에 자오러지는 그의 조부와 거의 같은 정치경력을 보냈다. 2000년 칭하이성 성장에 이어 2003년 칭하이성 당 서기, 2007년 산시성 서기 등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오러지가 산시성 당 서기 시절 시 주석 숭배에 열렬히 앞장섰기 때문이라고 빈과일보는 분석했다.
2007년 산시성 서기가 된 자오러지는 같은 해 17차 당 대회 때 시진핑이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에 입성해 차기 후계자로 낙점되자, 재빨리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 묘의 성역화를 추진했다.
그는 산시성 푸핑(富平)현에 있던 시중신 묘와 생가를 대대적으로 확장해 기념관 등을 조성했다. '애국주의 체육기지'라고 이름 붙여진 이 묘역은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 있는 마오쩌둥(毛澤東) 기념당에 버금가는 규모라고 한다.
나아가 자오러지는 시 주석이 하방(下放) 생활을 한 샨시성 옌안(延安)시 량자허촌(梁家河)의 성역화에도 앞장섰다.
하방은 문화대혁명 때 일정 기간 당원이나 그 자제를 농촌 혹은 공장으로 보내 일하게 한 것을 말한다. 시 주석은 젊은 시절 7년 동안 량자허촌에서 하방 생활을 했으며, 이 기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오러지는 량자허촌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지었다. 또한, 시 주석이 살던 토굴집과 쓰던 물건들도 모두 복원해 이 일대를 '혁명전통 교육기지'로 탈바꿈시켰다.
빈과일보는 "시 주석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흡족해한 것으로 전해졌다"며 "자오러지의 이러한 '노력'이 결국 그의 앞날을 탄탄하게 보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샨시성 서기였던 자오러지는 시 주석이 국가주석의 자리에 오른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의 요직인 중앙조직부장으로 발탁됐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