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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책사' 왕후닝, 中 최고 지도부 상무위원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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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책사' 왕후닝, 中 최고 지도부 상무위원 진출"

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등 삼대 사상 정립한 '中 최고 브레인'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왕후닝(王호<삼수변+扈>寧)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시되던 후춘화(胡春華) 광둥성 서기와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서기 대신 왕후닝과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조직부장이 상무위원이 될 것이라고 22일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당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지도부 7명으로, 5년마다 열리는 당 대회에서 결정된다.

이러한 전망은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博迅)이 최근 내놓았던 상무위원 명단과 일치하는 것이다.

왕후닝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해외순방 때마다 리잔수(栗戰書) 당 중앙판공청 주임과 함께 시 주석을 보좌하는 최측근으로 여겨진다.

1955년 산둥(山東)성에서 태어난 왕후닝은 상하이사범대학 간부학교와 푸단(復旦)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후 푸단대에 남아 교수가 됐다. 이후 국제정치학과 주임과 법과대 학장 등을 거쳤다.

이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측근이었던 쩡칭훙(曾慶紅)에 의해 1995년 당 중앙정책연구실에 들어오게 된다. 그는 정치조 조장, 부주임 등을 거쳐 연구실 주임을 맡게 돼 무려 22년간 중국 공산당의 정책 형성을 주도하게 된다.

그가 발탁된 것은 장쩌민 당시 상하이시 서기가 1989년 일어난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강제 진압을 주창했을 때 중국 지식인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장쩌민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왕후닝은 중국 정치체제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그 개혁은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당 중앙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신념이 최고 지도자의 마음에 든 것이다.






왕후닝은 1988년 발표한 논문에서 "중앙으로 집중된 리더십 모델은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고 급속한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서구의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모델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리더십 아래에서는 다른 사상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고, 예상치 못한 긴급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현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분열을 예방하는 강력한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은 시 주석이 지난 18일 19차 당 대회 개막식 연설에서 밝힌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왕후닝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주창한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과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과학적 발전관'을 모두 만들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시진핑 사상'도 그가 책임지고 정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 공산당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당장(黨章)에 명기된다면, 그가 보좌했던 3명 최고 지도자의 이론이 모두 중국 공산당 역사에 길이 남게 되는 셈이다.

이에 그에게는 3개 왕조의 황제를 모두 가르친 스승이라는 뜻의 '삼조황사(三朝帝師)'라는 호칭이 붙기도 한다.

왕후닝이 상무위원에 진입한다면 상당한 이변으로 여겨질 전망이다. 상무위원을 맡기 위해서는 성(省)이나 직할시의 당 서기를 한두 번 역임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왕후닝은 이러한 경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도 2002년 상무위원에 진입할 당시 성이나 직할시 서기 경력이 없었던 선례가 있다.

왕후닝은 현재 류윈산(劉雲山)이 맡는 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겸 중앙당교 교장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류윈산도 2012년 상무위원에 진입하기 전 10년간 중앙선전부장을 맡는 등 주로 당 중앙조직에서 활동했다.

SCMP는 "왕후닝이 행정 경험이 없다고 하지만 중앙서기처 서기를 맡아 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 주석의 해외순방 등을 오랜 기간 동행하는 등 경험이 풍부하다"며 그가 시 주석이 당 대회 연설에서 강조한 이론 정립과 이데올로기 선전을 맡을 것으로 전망했다.

ss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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