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합병은 적법·이재용은 유죄…민사-형사재판 왜 다른가
법조계 "서로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적용 법리·쟁점 판단 달라"
'국민연금 손해' 판단은 형사재판과 엇갈려…향후 관련재판 주목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을 둘러싼 1심 민사 재판에서 합병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형사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또 형사재판은 '유죄'로, 민사재판은 삼성의 합병 '적법'으로 언뜻 보면 달라 보이는 듯한 결과를 내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로 1심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단을 받았다.
경영권 승계작업의 하나로 지목된 게 바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이었다.
이 부회장 1심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추가 현금출연 없이도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 강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합병 무효 소송을 진행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도 이 같은 사정들은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그 외에 삼성 합병으로 얻는 '경영상의 이점'도 중요한 합병 근거로 받아들였다.
당시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세계 유가 하락과 더불어 해외 건설 사업부문에 대한 우려로 실적이 악화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레저나 패션, 식음료 등의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추진할 만한 동기가 있다고 봤다.
양사의 합병 공시 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가 상당히 상승하는 등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점도 눈여겨봤다.
이런 근거들을 토대로 재판부는 비록 합병이 포괄적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 해도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만 입힌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특정인의 지배력 강화가 법적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즉,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한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크게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다.
합병 의결의 효력을 판단할 때 준거가 된 상법·회사법 등 상사법과 합병 비율의 적정성 여부를 판정하는 근거가 된 자본시장법의 법리도 형사재판과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했다.
재판부는 ▲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정당하게 산정됐고 ▲ 그 기준인 주가가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로 인해 형성됐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며 ▲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 과정에 불법 행위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합병 목적이 부당하거나 위법하지 않고, 합병 찬성 의결을 무효로 할 만한 흠결이 없으며, 그러한 의결 자체에는 투자손실 초래나 주주가치 훼손 등의 배임적 요소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합병은 유효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편 합병 문제를 다룬 민사재판과 달리 법원이 이 부회장의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단을 내린 건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승계작업에 도움을 받으려고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목적 자체가 위법하지 않다고 해도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불법행위를 했다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은 포인트가 다르다"며 "합병이 적법하다고 해서 뇌물 혐의를 무죄로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반대로 합병 과정에서 뇌물을 줬다 해도 합병 자체를 무효로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민사 판결이 이 부회장에게 불리한 자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형사 사건 결론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한마디로 어느 쪽의 유·불리를 단순히 따지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결국 동일한 사실관계를 놓고 이뤄지는 재판이라고 하더라도 규율 법률의 이념과 목적, 재판의 쟁점과 법리가 다르므로 서로 간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형사재판은 고의범 처벌, 민사재판 손해배상 소송은 피해 회복, 회사법은 회사의 적정한 운영과 기업의 유지·강화 등을 지배적 이념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각각 법리 적용·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번 1심 결론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와 그 과정에서 공단이 손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재판부는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와 판단을 달리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조의연 부장판사)는 홍 전 본부장에 대해 "자산의 수익성과 주주가치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함에도 여러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기금에 불리한 합병 안건에 투자위 찬성을 끌어냈고, 그 결과 공단은 보유주식 가치가 감소하는 손해를 입게 됐다"며 형법상 배임 혐의를 인정해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민사합의16부는 이날 "홍 전 본부장이 찬성 표결을 유도한 행위는 인정되지만 투자위의 찬성 의결 자체가 거액의 투자손실을 감수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 같은 배임적 요소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합병에 찬성한 투자위원들은 합병으로 인해 지배구조가 안정되는 게 기금 수익에 도움이 되고, 합병 법인이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로 자리매김하면 그에 수반되는 이익도 상당한 만큼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홍 전 본부장은 내달 14일 2심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다.
다만 민사재판은 원고 측 주장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형사재판과는 증명의 정도나 접근 방법, 법리 전개 등이 확연히 다른 만큼 '단순 대입'은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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