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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사랑 그린 영화 "성인 모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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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사랑 그린 영화 "성인 모욕" 논란

실화 바탕 대작에 러시아 정교회 반발, 개봉전 방화사건으로 발전

감독 "나도 신자. 영화 보고 판단해 달라"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러이사 혁명이 11월로 100주년을 맞는 가운데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발레리나의 사랑을 그린 대작 영화 '마틸다'가 일반에 공개되기도 전에 러시아 정교회 신도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신자들의 반발은 방화사건으로 까지 발전해 예고편 상영을 중지하는 영화관도 속출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지난 8월 열린 영화 마틸다 반대집회에는 1천500여명의 신자가 참석했다. 정교회 사제는 니콜라이 2세의 거대한 초상화 앞에 서 "사악한 세력이 순교자인 황제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외쳤다. 신자들의 손에는 "마틸다 상영을 막자"고 쓰인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친구와 함께 집회에 참가한 나탈리아 크라프첸코(40)는 "황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라며 "그를 모욕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 마틸다는 실존 발레리나의 이름이다. 니콜라이 2세가 결혼하기 전 친밀한 관계였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러시아인 알렉세이 우티테리 감독이 호화 의상과 궁정을 배경으로 촬영,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을 노리는 대작으로 제작했다. 러시아에서는 이달 26일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예고편에는 니콜라이 2세가 값비싼 선물로 마틸다의 주의를 끄는가 하면 나체로 잠자리를 함께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황제에 취임하기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실패를 후회하는 약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정교회 신자들은 이런 묘사에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혁명 후 같이 총살당한 가족과 함께 2000년에 성인에 추가됐다. 귀족과 농민을 포함, 5천명이 넘는 러시아 정교회 성인 중 러시아 제국의 황제로는 그가 유일하다. 청렴한 성격에 가족애의 이미지도 강하다.

러시아 정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키릴 총주교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억측은 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자들은 상영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10만명의 서명부를 푸틴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정치가도 합류했다. 포크론스카야 하원의원은 내·외국인 4만명 이상으로부터 상영중지 요청을 받았다면서 "영화에 보조금이 부당하게 이용된 혐의가 있다"며 당국에 수사를 요구했다.

신자들의 반대활동은 8월 이후 더 과격해지고 있다. 우티테리 감독의 스튜디오에 화염병이 투척된 것을 비롯, 영화관에 화염병을 실은 자동차가 돌진해 불이 나기도 했다. "그리스도국(國)- 성(聖)러시아"라는 단체 회원이 또 다른 방화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됐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상영을 취소하는 영화관도 속출하고 있다. 주요 TV방송국은 영화 선전을 내보내지 않고 있으며 주연배우는 시사회 참석을 거부했다. 우티테리 감독은 모스크바 시사회에서 "나도 정교회 신자"라며 "영화를 보고 판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2012년 여성 밴드 '푸시 라이엇'(Pussy Riot) 사건이 신자들의 과격화를 부추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모스크바의 지하철이나 붉은 광장에서 즉흥연주를 하던 페미니스트 펑크·록그룹인 푸시 라이엇은 당시 푸틴 대통령과 키릴 총주교를 비판하는 노래를 성당안에서 연주, 폭력죄로 멤버 3명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총주교는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총주교와 거리를 두고 있는 안드레이 크라예프 보좌주교는 "총주교가 신자들에게 증오할 권리를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옛 소련에서는 "종교는 아편"이라며 정교회를 억압했지만 정교회는 1991년 소련 붕괴 후 영향력을 회복했다. 특히 2009년 취임한 키릴 총주교는 2012년 대선때 푸틴 지지를 선언하는 등 푸틴과 친한 사이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궁에 공관도 갖고 있다. 푸틴 대통령도 정교회 행사에 자주 출석하며 정교회를 국민의 애국심 고취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에는 신앙심 모욕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 각급 학교에서 정교회에 관한 수업을 크게 늘릴 계획도 세워 놓고 있다. 2015년에는 그리스도와 나체의 여성이 얽히는 장면이 등장하는 오페라에 정교회 측이 "도덕적으로 문제"라고 항의해 극장 지배인이 해임되는 소동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자들이 정권의 후원을 배경으로 테러행위로 까지 발전했다. 종교학자인 콘스탄틴 미하일로프는 아사히(朝日)신문에 "정부는 신자의 과격화를 원하지 않지만 정교회로서는 정치적 발언력을 강화하는 이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게오르기 표드로프 사회정책조사센터 소장은 "정부는 사건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면서 "(사태가 악화하면) 교회와 정부 모두 제어할 수 없는 사태가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lhy5018@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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