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이란핵협정 불인증에 담긴 트럼프의 대북 메시지
(서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이란핵협정(포괄적공동행동계획) 준수에 대한 불인증을 선언했다. 2015년 7월 '이란의 핵 개발 중단과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미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P5+1)이 이란과 어렵게 타결했으나, 이번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핵협정을 '가장 일방적이고 최악인 거래'로 규정하고 "기껏해야 이란의 핵 개발 능력을 잠시 지연시키는 협상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기까지 선언하지는 않아 여지는 남겨 놓았지만, 그의 이번 결정은 즉각 미 국내외의 비판을 불렀다. 미국과 함께 참여한 영국과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은 우려를 표시하면서 협정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사찰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반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국제사회의 공동 관심 분야에서 일방적으로 동맹국들과 엇박자를 내고 있어 결국 동맹국을 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비판했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번 조치가 북한에 던지는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이 북한과 거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 사례에서 보듯, 위협은 방치할수록 더욱 심각해진다"고 말해 북한도 염두에 뒀음을 내비쳤다. 15일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대사가 북한도 겨냥한 결단임을 분명히 했다. 틸러슨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과 '매우 까다롭고 구속력 있는 합의'를 기대한다면서 "목표는 비핵화된 한반도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일리 대사도 "우리가 이란핵협정을 검토하는 모든 이유는 북한 때문"이라며 "앞으로 나쁜 합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완벽한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이 협상에 나오도록 "애걸하거나 인센티브 같은 것들로 설득하려고도 안 할 것"이라고도 했다. 외교 분야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대변한다고 봐야 한다.
이들의 발언에서 보듯,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대북 협상은 없다는 점을 확언한 것이어서다. 북한이 굴복하고 들어오라는 통첩인 셈이다. 북한의 대응을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로 볼 때는 강 대 강 대치가 격화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맞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핵 개발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주장한 안동춘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의 발언에서도 북한의 입장이 확인된다. 이번 이란핵협정 파기 위협이 미국의 국제적 신뢰를 허물어 대북 협상을 더 어렵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P5+1이 이란과 어렵게 합의한 다자 협정을 미국이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무시한다면, 북한 입장에선 설사 북미 간 협정이 타결되어도 준수되리란 보장이 없다고 여길 수 있다. 미국은 "이란 핵 합의 무력화는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희망을 내동댕이칠 것"이라는 WP의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북한이 전격으로 핵 포기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갈수록 협상을 통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은 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북한이 7차 핵실험이나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감행한다면, 가뜩이나 긴장된 한반도 위기는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 강 대 강 대치가 격화하면, '제재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을 지닌 우리 정부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게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 달 초순 처음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다양한 의제가 있겠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처 방안이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다. 외교안보팀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미국 실무진과의 의제 조율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제재는 하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의 끈도 놓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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