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새는 무적함대?…'신기록 행진' 삼성전자의 고민
총수 부재 장기화·재벌개혁 기조 등에 불확실성 고조
선진국 통상 압박·글로벌 경쟁업체 도전으로 위기론 팽배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지난 2015년 5월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 고덕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을 시작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1년 만에 '총수대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린 대규모 투자 결정이었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삼성'을 이끌 차세대 리더십으로 인정받았다는 게 삼성 내부의 평가다.
실제로 당시 투자 결단은 3년여 뒤인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 신화'를 끌어낸 토대가 됐다고 삼성은 보고 있다.
올해 3분기 또 다시 사상 최고 실적을 낸 삼성전자의 임원들은 환호성에 앞서 이런 과거 일화를 언급하면서 고민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세간에는 "총수가 없으니 실적이 더 좋아졌다", "차제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라"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실적 신기록은 총수가 과거에 닦은 기반에서 가능했고, '총수 공백' 장기화 사태로 인해 더는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게 됐다는 게 삼성의 논리다.
권오현 DS(디지털솔루션) 부문장·윤부근 CE(소비자가전) 부문장·신종균 IM(IT·모바일) 부문장 등 3명의 전문경영인이 있지만 그룹의 미래를 결정할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분기 주요 경영전략과 대규모 투자, 인수·합병(M&A) 등을 결정하는 사내 경영위원회가 단 2차례 열리는 데 그쳤다는 것도 '총수 부재'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윤부근 사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그룹을 대규모 선단, 이 부회장을 선단장, 자신을 선단을 구성하는 어선의 선장으로 비유하면서 "저희(각 부문장)가 사업구조 재편이나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배가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아울러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재판과 새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에 따른 '불확실성'도 삼성전자로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대외적인 여건도 녹록지 않다. 부침이 심한 반도체 시장의 특성상 상승 흐름이 꺾일 경우 충격이 클 수밖에 없고, 이른바 '반도체 굴기'를 외치는 중국의 위협도 걱정거리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따른 통상 압박이라는 새로운 '악재'까지 등장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미리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계속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컨트롤타워가 없어 문제라는 게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위기론의 핵심이다.
복수의 삼성 임원은 "지금 삼성이 거두고 있는 수확물은 이미 몇 년 전 갈고 닦은 문전옥답(門前沃畓)에서 나오는 것"이라면서 "지금은 '무적함대'인 것 같지만 배에 물이 새고 있다는 공포감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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