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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타인의 욕망에 꿈을 짓밟힌 과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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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개막작 '유리정원'…"타인의 욕망에 꿈을 짓밟힌 과학도"

신수원 감독 "상처받지만, 신념 포기하지 않는 여성 그리고 싶었다"



(부산=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한 여자가 있다. 실험실에 파묻혀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으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도 '재연'(문근영 분)이다. 12살 때부터 한쪽 발이 자라지 않아 다리를 저는 장애를 지녔다. 그녀는 묵묵히 자기 일만 하지만, 세상은 그녀에게 가혹하다. 그녀가 사랑했던 교수는 새 애인과 함께 그녀의 연구성과를 빼앗는다. 사랑과 꿈을 한순간에 빼앗긴 그녀는 자신이 살던 숲으로 돌아가 세상과 고립된 채 혼자만의 연구를 계속한다.

한 남자가 있다. 무명 소설가인 그는 유명 작가를 상대로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문단에서 매장당할 위기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혈액순환마저 잘 안 돼 몸 한쪽이 서서히 마비돼간다. 우연히 재연의 삶을 목격한 그는 소설의 영감을 떠올리고, 그녀를 훔쳐보며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소설 속에 녹여낸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도약하지만, 재연의 충격적인 비밀을 목격하고 절규한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된 '유리정원'이 12일 개막식에 앞서 공개됐다. 이 영화는 참신하면서도 낯선 소재와 신수원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름 모를 고목이 즐비한 아름다운 숲 속과 도시의 차가운 옥탑방을 무대로 현실과 환상, 혹은 소설 속 내용이 오가며 펼쳐져 한편의 슬픈 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인공혈액을 통해 사람이 서서히 나무로 변해가는 등 섬뜩하면서도 놀라운 발상이 담겨있기도 하다.

주제는 묵직하면서도 명확한 편이다. 타인의 욕망 때문에 짓밟힌 한 여인의 사랑과 아픔, 복수, 그리고 자연(나무)을 통해 서로를 이용하기만 급급한 세상에 대한 비판과 공존의 메시지를 던진다. "순수한 것은 쉽게 오염된다", "나무들은 가지를 뻗을 때 다치지 않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지만, 사람들은 다 죽인다" 등 재연의 대사에서도 이런 주제 의식은 직접 드러난다.

이 영화를 연출한 신 감독은 이날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소재"라고 말했다.

그는 "전작인 '마돈나'에서 식물인간이 등장하는데, 그때 시나리오를 쓰면서 뇌사상태에서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것일까 고민했다. 또 인터넷상에서 여인 형상을 한 나무 사진을 본 뒤 나무가 되고 싶은 여주인공이 세상에 상처 입고 꿈과 이상을 짓밟힌 상태에서 나무로 환생하는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신 감독은 그러나 "상처 입는 여성 캐릭터지만,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영화 속에서 소설가 재훈은 선배 작가의 표절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표절한다.

신 감독은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면서도 "저 역시 창작자로서 다른 사람의 삶을 영화에 담는 데 대한 (윤리적) 고민을 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이어 "살다 보면 내가 만든 가치를 남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빼앗기도 한다"면서 "창작자뿐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리정원'은 미스터리 판타지 드라마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과학도로 살아가는 어려움, 4대강의 문제점 등이 간접적으로 담겨있다. 신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과학도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확고한 주제 의식과 그만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로 일찌감치 국제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단편영화 '순환선'으로 2012년 제65회 칸영화제 카날플뤼상을 받았다. 장편 '명왕성'(2013)으로는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 특별언급상을 수상했고, '마돈나'(2015)로 2015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을 받았다.

영화 '사도'(2015)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출연한 문근영이 재연역을 맡아 내면의 상처 등을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잘 표현해냈다. 문근영은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캐릭터가 끌렸다"면서 "아픔이 있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어서 배우로서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소설가 재훈 역을 맡은 배우 김태훈은 "지난해 '춘몽'에 이어 '유리정원'으로 2년 연속 부산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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