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해외송금 '헛바퀴'…돈세탁방지 국제기준 장벽에 막혀
8개 업체 등록했으나 실제 송금 서비스 개시한 업체 없어
소액외화이체업도 허용한 지 1년반 넘도록 서비스 제공자 없어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핀테크 업체가 해외송금을 할 수 있게 규제를 풀었지만, 서비스 제공자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핀테크 업체가 소액 해외 송금업을 할 수 있도록 등록 기준 등을 완화한 관련 법령이 올해 7월 18일 시행됐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까지 8개 업체가 등록했으나 실제로 국외 송금 서비스를 개시한 핀테크 업체는 아직 없다.
작년 3월에는 핀테크업체가 은행과 협약해 위탁형 소액 외화이체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하지만 1년반이 넘도록 이런 모델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아직 없다.
금융권은 핀테크업체 등이 자금세탁방지 규범을 충족하고 수익을 낼 모델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들의 송금 방식으로는 '풀링'(pooling)으로 불리는 묶음 송금, 외국으로 미리 큰돈을 보내고 나중에 고객의 의뢰를 받아 현지에서 개별 송금하는 '프리 펀딩' 등이 잠정적 모델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런 모델이 국제 중계은행의 요구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은행권의 설명이다.
뭉칫돈을 보내는 풀링은 돈을 쪼개 보내는 것보다 비용은 적게 들지만 이를 악용한 돈세탁 시도가 우려된다는 것이 중계은행의 시각이다.
만약 테러 자금이나 북한 측으로 유입되는 돈이 섞여들면 중계은행은 물론 핀테크 업체에 계좌를 제공한 국내 은행도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은행권 관계자는 전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가 이란, 수단, 쿠바 등과 대규모 금융거래를 한 혐의로 2015년 89억 달러의 벌금이 확정됐다는 기사를 언급하며 소액 해외 송금업에서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관여한 은행도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리 펀딩 역시 의뢰인이나 자금의 성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으므로 중계은행의 입장에서는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수익은 작고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중은행이 잠재적 경쟁자인 핀테크업체에 협력할 동기가 거의 없는 셈이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송금도 거론되지만, 가상통화는 성격 논란에 거품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라 송금 수단으로 채택하기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웨스턴유니온이나 머니그램 등 국제적인 송금회사도 큰 틀에서는 풀링 방식 등을 활용한다.
이들은 돈세탁방지 시스템 마련을 위해 장기간 노력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도이치뱅크, JP모건체이스, 씨티은행 등 주요 중계은행으로부터 이를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걸음마 단계인 국내 핀테크 업체가 중계은행으로부터 웨스턴유니온 등과 동등한 대우를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웨스턴유니온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국내 한 금융사 관계자로부터 소액 송금 업체의 증가로 인한 시장 잠식 우려에 관한 질문을 받고 '우리 수준으로 법령·절차를 준수하는 체계를 갖추려면 최소 몇십 년은 걸릴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시중은행은 의뢰인의 정보를 중계은행에 공유하며 개별 송금을 한다.
시중은행과 중계은행이 송금자 정보 등을 일일이 검토해 문제성 자금을 걸러내는 방식이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핀테크업체가 같은 방식을 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당국자는 정부 역할은 규제를 푸는 것일 뿐이며 구체적인 사업방식은 민간이 찾아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재부 관계자는 "어떻게 외국에 돈을 보낼 것인가는 제도의 문제는 아니며 사업자가 고유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며 "외국은 오래전부터 그런 제도가 있었지만 우리는 새로 도입했으므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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