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긁고 '나몰라라' 주차 뺑소니…"끝까지 잡는다"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부딪히는 장면은 정확히 안 보이지만, 옆으로 지나갈 때 살짝 차체가 흔들리잖아. 그리고 뭔가 느낀 것처럼 잠깐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것도 수상해."
지난달 28일, 의정부의 한 모텔에 형사 2명이 찾아왔다. 의정부경찰서 주차뺑소니 전담 수사팀 소속인 한종호·박종환 수사관은 이날 모텔 앞에 주차된 승용차를 들이받아 심하게 부서지게 하고 달아난 뺑소니 가해차를 추적하고 있었다.
가해 차량은 물론, 범행 시점도 불분명한 상황. 모텔 앞 폐쇄회로(CC)TV를 빠르게 훑던 이들에게 수상한 차 한 대가 포착됐다. 피해차량 앞에 주차됐던 한 SUV 운전자가 차를 돌려 나가다 잠시 멈칫했다.
동행한 기자가 보기에는 수상한 점이 없어 보였지만 형사의 눈에는 영상속 차체의 흔들림이 포착됐다.
폐쇄회로를 수차례 돌려보던 형사들은 현장에 나가 맨홀이나 요철 등이 없는지 살폈다. 충돌 이외에 차체가 흔들릴만한 요인이 없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다.
"CCTV를 계속 보다 보면 믿는 대로 보게 되기 때문에 현장 도로 상황, 차들의 높이, 차에 난 흔적과 페인트 색 등 여러 측면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모텔에서 CCTV 화면을 확보한 이들은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한 원룸 건물 앞 뺑소니 사고 현장. 현장 CCTV 각도와 상황 등을 확인한 이들은 인근 공영주차장으로 향해 또 다른 뺑소니 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4곳의 각각 다른 현장을 둘러보니 오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CCTV나 블랙박스는 영상 저장 기간이 짧아서 시간을 지체하면 미제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주차뺑소니 수사는 특히 시간과의 싸움이죠."
지난 6월 전까지 주차된 차를 들이받으면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고 도망치는 게 사실상 유리했다. 범행 사실이 밝혀져도 "몰랐다"고 잡아떼면 대부분의 경우 보험처리만 필요할 뿐 별도의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공론화되며 6월 도로교통법이 개정됐다. 주차된 차를 상대로 물피 사고를 내고 피해자에게 알리지 않은 경우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고, 이와 별개로 벌점 25점이 부과된다.
법 개정 이후 4개월, 주차뺑소니 사고 신고는 교통 분야 수사의 큰 축을 차지하게 됐다. 의정부경찰서의 경우 하루에만 5∼8건이 접수된다. 전체 교통범죄 신고 건수의 절반에 해당한다.
일반적 교통사고와 비교하면 인명피해 등은 크지 않지만 달아난 범인을 쫓는 '수사'가 필요해 의정부서 등 상당수 경찰서에서는 전담수사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조사 부서가 주간과 야간 당직 체제로 돌아가니 수사관들이 발생 사건 처리에만 집중하고 품이 많이 드는 주차뺑소니 사건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담팀을 운영하며 이러한 문제가 많이 해결됐다"라고 설명했다.
5명으로 이뤄진 의정부경찰서 주차뺑소니 전담팀의 검거율은 70% 정도. 상당수의 사건이 실제 주차뺑소니가 아니라 개인 과실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결정적인 단서가 없으면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수사해야 해서 힘들기도 하다"는 수사팀은 "하지만 분통이 터지는 피해자의 마음과 비양심적인 가해자들을 생각하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잡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고 말했다.
전담팀은 용의자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직접 집까지 찾아가 차량을 확인한다. 최근에는 의정부에서 뺑소니를 치고 달아난 범인을 CCTV 동선 분석을 통해 남양주까지 찾아가 검거하기도 했다. 통신 수사나 압수수색 영장까지도 발부받아 범인을 검거한다.
수사팀은 주차뺑소니 범인 검거를 위해서는 블랙박스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주차뺑소니 수사는 충돌이 언제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시작이다. 블랙박스 녹화 영상은 충돌 시점을 규명할 핵심적 단서다. 충돌 부위가 블랙박스에 찍히지 않는 차량 옆면이나 뒷면이라도 충돌 시 소리와 함께 화면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언제 충돌이 일어났는지만 확인이 되면 주변 방범용 CCTV, 목격자 진술 등 다양한 단서 활용이 가능하지만, 충돌 시간이 불분명하면 사건 해결 확률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일어나는 결정적 순간에 블랙박스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하다. 블랙박스의 용량에 한계가 있으므로 '주행중'과 '이벤트', '주차중 모션' 등 기능별 블랙박스 용량 할당 설정에 신경 써야 한다. 또, 구매 후 시간이 오래된 블랙박스 메모리칩의 경우 컴퓨터가 내용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점검이 필요하다.
수사팀 이우식 경위는 6일 "블랙박스를 선택할 때는 상시녹화 기능이 중요하며, 화질이 필요 이상으로 좋은 블랙박스는 저장 시간이 짧아 오히려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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