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10·4선언 주역 등판에도…남북관계 여전히 깜깜
조명균·서훈…北 '핵무력 질주' 속 남북관계 경색 지속
北주역 김양건 통전부장은 사망·최승철 부부장은 처형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10년 전인 2007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마주 앉은 노무현 대통령 뒤에 필기구를 든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1990년대부터 각종 남북회담에서 협상 경험을 쌓아온 조명균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회의록 작성차 배석한 것이다.
당시 조 비서관은 서훈 국가정보원 3차장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실무를 도맡아 10·4 정상선언을 도출해낸 주역이다.
이들은 10년 뒤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으로 기용됐다.
10·4 선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과 북한 당국자들을 상당 기간 직접 상대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보수정부 9년간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틔우는 것이 이들의 '1차 임무'였다.
10·4 정상선언 주역들의 '전진배치'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10·4선언 10주년을 맞은 현재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하겠다'며 각종 대형 도발에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어느 때보다 엄중해졌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경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8월 말 한미 연합 을지포커스가디언(UFG) 훈련을 마치고 나서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면 10·4 선언 10주년을 계기로 민간차원의 남북공동행사와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내년 2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통해 본격적으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모색한다는 구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이 9월 들어 6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정상각도 발사까지 감행하면서 정부는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쪽으로 물러선 상태다.
한편 10·4선언을 이끈 북한의 주역들은 사망했거나 처형을 당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전반을 관장해온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2015년 12월 말 북한 매체를 통해 교통사고로 숨진 사실이 알려졌다.
김 비서와 함께 10·4 선언 도출에 깊이 관여했던 최승철 통일전선부 수석 부부장은 2008년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명목상으론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대남 교류협력 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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