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조상] ① '언제쯤 오려나'…조상님들의 애타는 기다림
주인 없는 무연고 묘 전국 통계 없어…단지 수백여 만기로 추정
주인 없는 시신 지자체가 화장 후 10년 안치했다가 매장·수목장
[※ 편집자 주 =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풍성한 가을. 추석은 갓 지은 쌀밥에 따뜻한 고깃국을 상에 올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민족 최대 명절입니다. 햇과일과 싱싱한 생선, 노릇노릇한 전도 옆에 놓입니다. 차례가 끝나면 말끔히 벌초가 이뤄진 조상 묘를 찾아 예를 올립니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쓸쓸한 죽음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추석을 맞아 무연고 묘의 실태를 돌아보고 변하는 명절 문화를 고민하는 기획물 2편을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추석 아침 고운 한복을 입은 후손들은 잘 차려진 차례상에 예를 올린다.
차례를 마친 이들은 떡과 과일, 술을 싸들고 조상을 뵈러 선산이나 공원묘지, 혹은 납골당을 찾는다.
미리 말끔하게 벌초한 조상 묘 주변에 소주를 붓고 차례 때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굽혀 극진히 조상을 모신다.
오랜 세월 뿌리내린 유교 문화와 효(孝) 사상에 기반을 둔 우리의 명절 모습이다.
과거부터 후손들은 멸족(滅族) 등 참사 등을 제외하곤 정성스레 봉분을 만들어 돌아가신 조상을 모셨다.
비단 추석과 설날 등 명절만 아니라 평소 때도 가까운 조상을 돌아보는 게 후손의 업이었다.
유력 가문은 조상 묘에 상주하는 '묘지기'를 둬 도굴이나 침범, 산짐승의 파헤침으로부터 봉분을 보호하기 까지 했다.
제단과 석상, 사당 등을 만들어 조상에 대한 극진한 예를 올리는 가문도 상당했다.
현재까지 전해진 이러한 풍습은 변화한 사회 인식과 가족 구성 등 다양한 요인들로 쇠퇴하고 있다.
최근 산과 공원묘지에는 잘 벌초한 봉분과는 달리, 수풀이 무성하거나 잡초가 웃자란 이름없는 묘들이 즐비하다.
일부는 누군가에 의해 파헤쳐지고 오랜 세월 바람에 깎여 봉분의 형체조차 남지 않은 묘들도 눈에 띈다.
이렇게 후손들이 찾지 않아 방치된 이른바 '무연고 묘'가 전국에 수백 만기가 산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통계는 정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대신 장례를 치를 가족 등이 없는 무연고 사망자가 전국적으로 2012년 749명에서 2014년 1천8명, 지난해 1천226명으로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것에 비추어 무연고 묘의 급속한 증가를 가늠할 뿐이다.
장례업무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과거 무연고 묘를 200여 만기 정도로 추산했다는 분석이 있지만 검증된 자료는 아니다"며 "무연고 시신은 처리 과정에서 숫자를 집계하고 있으나 무연고 묘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봉분이 깎이거나 흔적만 남는 경우가 더러 있어 정확한 숫자 파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무연고 묘 대부분은 지자체나 민간이 주도하는 산림개발 사업 과정에서 발견된다.
무연고 묘도 무연고 시신과 마찬가지로 공고를 내 가족 등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관할 지자체의 개장 허가를 얻어 시신을 화장한다.
화장한 시신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9조에 따라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납골함에 안치해 10년 동안 연고자를 기다리게 된다.
이후에도 인수되지 않은 시신은 공원묘지 등에 집단 매장하거나 수목장 등 자연장으로 처리한다.
이 경우에는 뒤늦게 후손이 나타나더라도 온전한 조상 시신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추세에 비춰 이렇게 처리하는 무연고 묘와 시신이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부의 예측이다.
장례 문화가 매장보다는 화장을 선호하는 쪽으로 변한 데다 제례도 과거에 비해 많이 축소하는 추세여서 조상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화장 비율이 높아지면서 전국적인 묘지 숫자는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사업 과정에서 발견되는 무연고 묘와 시신 숫자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안치와 처리 등 비용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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