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5천 자 한글에 담긴 '내가 아는 것'…강익중 예술프로젝트
아르코미술관서 대표작가전 11월 19일까지 열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제1전시장이 '잔' '나' '인' '피' '영' 등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한글로 가득 찼다.
가까이 다가가자 '책 속에는 지식의 나이테가 있다 한예빈'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션' '잔은 채우지 않는다 빙리' 등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유명 설치미술가인 강익중 작가가 한글을 아는 세계 시민 2천300명과 함께 완성한 작품 '내가 아는 것'의 전경이다.
이들이 지난봄 써서 보내온 '내가 아는 것' 문장을 가로·세로 각각 3인치(7.62m)의 소나무 목판에 붙인 뒤 액체 플라스틱을 발라 2만5천 개의 타일로 만들었다.
문장 중간중간에는 작가가 천착해온 주제인 달항아리를 그려 넣어 일종의 마침표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들 작품은 석굴암 원형 방의 형상을 띤 제1전시장 거대한 벽면에 설치됐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오히려 더 쓰기를 어려워한 것 같아요. '한방'을 보여줄 문장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하. 어린이들이 쓴 문장이나 생활에서 나온 문장이 더 재미있어요."
2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다채로운 문장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어줬다.
미국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97세 할아버지는 '내 장수의 비결은 정직성에 있다'는 문장을 또박또박 써서 보내왔다. '콩나물 무침은 참기름 맛이다'라는 식당 주인의 문장도 인상적이다. 5살 어린이가 쓴 '어른 과자 맛있다고 한 개 두 개 먹으면 배가 아프다'라는 문장에는 웃음이 나온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도 '내가 아는 것'에 참여했다.
영화배우 이선균은 '술과 부인에게는 덤비지 말라'는 문장을 내놓아 큰 인기를 끌었고, 노희경 작가는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문장을 내놓았다. 박원순 서울시장,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나경원 의원 등의 '한 마디'도 눈에 띈다.
'내가 아는 것'은 작가가 30년 전부터 써온 시이자 프로젝트 제목이기도 하다.
'폭풍 직전 하늘은 연한 청록색이다'라고 끄적인 것이 '내가 아는 것'의 출발점이 됐다. 이태원 경리단길 언덕배기에 살던 어린 시절, 폭풍이 몰려오기 전 보이는 남산 하늘이 항상 청록색이었다는 것이 떠올라 완성한 문장이었다.
작가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만 봐도 사람들이 남의 삶은 궁금해하면서, 자신이 정작 무엇을 알고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많은 사람과 '내가 아는 것'을 찾아가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시민과 함께하는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길 희망한다.
'내가 아는 것'은 2천300여 명의 삶과 역사, 기억이 축적된 지식의 집합체다.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 결국 '우리가 아는 것'을 완성하고 싶다고. 100년, 200년이 지난 뒤 '내가 아는 것'은 한글을 매개로 한 정신적 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아르코미술관 제2전시장은 '내가 아는 것' 프로젝트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람객들이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할 수 있는 무대로 꾸몄다.
미디어아티스트 강기석, 김다움, 무진형제, 건축가 정이삭, 실험극단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와 제너럴쿤스트, 에듀케이터 전민기 등 젊은 예술가들이 함께한다. 전시는 11월 19일까지. 문의 ☎ 02-760-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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