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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벌교, 대하소설 '태백산맥' 주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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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벌교, 대하소설 '태백산맥' 주 무대

(보성=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태백산맥'은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서편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 조금씩 깎아…"로 시작한다. 그리고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적막은 깊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거리는 소리인 듯 멀리 스쳐 흐르고 있었다. 그림자들은 무덤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로 끝을 맺는다.






조정래 작가의 필생 역작인 '태백산맥'은 4년간의 자료 조사 후 1983년 집필을 시작해 1986년 10월 '제1부 한(恨)의 모닥불' 1~3권이 출간된 후 1989년 10월 '제4부 전쟁과 분단' 8~10권으로 완간됐다. 분단문학의 새 지평을 연 이 소설은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산 자락에 자리 잡은 현부자집 제각 부근에서 시작해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 가을 어느 날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과거를 반추한다.

벌교를 주 무대로 지식인 염상진과 그를 따르는 하대치, 회의하는 지식인이지만 역사로부터 끊임없는 선택과 실천을 강요당하는 김범우, 우익 청년단 단장 염상구, 새끼무당 소화 등 270여 명이 엮어내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씨줄이 되고 날줄이 되어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베로 짜였다. 지금까지 850만 부 이상 판매되고, 200쇄를 돌파한 베스트셀러다.

김점미 문화관광해설사는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가 살던 벌교를 소설 속의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펼쳐졌던 장소들이 그대로 남아 문학기행과 현장답사를 하는 답사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봉건적 모순이 어떻게 좌·우익 이념 대립으로 확산됐는지 걸쭉한 육담과 전라도 방언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 분단문학의 새 지평 연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시발점을 작가 조정래와 소설 '태백산맥'의 모든 것이 전시되고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으로 잡았다. 문학관은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북향으로 지어졌다. 특히 전시실에서 마주 보게 되는 높이 8m, 폭 81m의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은 지리산부터 백두산까지 4만여 개의 자연석 몽돌을 채집하고 하나하나에 민족의 염원을 담아 건식(乾式)공법으로 제작한 옹석벽화(擁石壁畵)로 이 또한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태백산맥'을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과 노력의 흔적을 발로 뛰며 꼼꼼히 기록한 취재수첩, 등장인물에 대한 메모, 만년필, 1만6천500장의 육필원고 등이 증명하는 듯하다. 카메라, 면도기, 손톱깎이, 구둣주걱, 장갑, 취재용 간편복, 지팡이, 한복 정장 등에서는 작가의 체취와 존재가 느껴진다.

문학지 '현대문학'과 '한국문학', 영화 '태백산맥', 프랑스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태백산맥', 11년 만에 무혐의 처분을 받은 소설에 대한 이적성 시비 등 작가의 삶과 문학에 대한 다양한 자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라는 글귀가 붙어 있는 2층의 필사본 전시관에는 '태백산맥' 전 10권을 원고지나 노트에 모두 베껴 쓴 독자 필사본 23세트가 놓여 있다.






문학관을 나오면 바로 옆에 소설에서 무당의 딸로 나오는 소화의 집과 현부자집이 있다. 한옥과 일본식이 섞인 현부자집은 솟을대문 위에 2층 누각을 얹은 색다른 양식의 건물로 중도 들녘이 내려다보인다. 일본인 지주의 이름을 딴 중도(中島·나카시마)방죽으로 가면 갈대만 나부낀다.

농민들은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방죽 쌓기에 동원됐는데 소설에서는 "저 방죽에 쌓인 돌뎅이 하나하나, 흙 한 삽, 한 삽이 다 가난한 조선사람덜 핏방울이고 한(恨)덩어린디, 정작 배불린 것은 일본눔덜이었응께, 방죽 싼 사람들 속이 워쨌겄소"라고 묘사돼 있다.

벌교천을 따라 걸어가면 염상구가 땅벌이라는 깡패 왕초와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나'를 겨루던 철다리가 나온다. '벌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을 떠올리며 우리 민족의 비극과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소화다리로 향한다. 소설에서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보겠구만이라"라고 했듯이 좌우익이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 위에서 총살형이 이루어졌다.






몇 걸음 더 가면 벌교의 랜드마크인 홍교(보물 제304호)와 마주친다. 이곳에서 골목길을 따라 대지주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지고 있는 김범우의 집을 둘러본 뒤 홍교 다리를 건너 벌교금융조합을 찾아간다. 일제 강점기에 사용되었던 금고와 직원 전용 출입문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선 시대 조선통보와 한국 최초의 화폐 등 세계 화폐를 전시하고 있다. 소설에서 금융조합장 송기묵은 돈을 다루는 사람답게 치부에도 능해 은밀하게 고리대금업까지 해가며 탄탄한 재력을 확보하지만 결국 좌익의 손에 죽고 만다.

친일파가 척결되지 못한 이 땅의 비극을 생각하며 걷다 보면 토벌대 숙소였던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인 보성여관(등록문화재 제132호)에 닿는다. 현재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보전·관리하는 보성여관은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다. 1935년 문을 연 보성여관은 문화유산에서의 하룻밤을 체험할 수 있는 숙박동, 벌교와 보성여관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실, 벽이 없이 미닫이문만 4칸으로 나누어져 있는 다다미방, 카페와 소극장으로 구성돼 있다.

2층의 다다미방 창문으로 벌교를 내려다보며 조정래 작가의 말을 되새겨본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chang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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