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중 싱가포르 총리, 시진핑 주석과 회담…왕치산도 만나(종합)
껄끄러웠던 싱가포르, 中권력재편 동향 탐문 의도 있는듯
(상하이·홍콩=연합뉴스) 정주호 안승섭 특파원 =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껄끄러웠던 싱가포르의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중국 방문에 나서면서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와 회담했다.
20일 중국 인민망과 싱가포르 연합조보 등에 따르면 리 총리는 전날 베이징에 도착,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회담을 가진데 이어 이날 왕 서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차례로 회동했다.
시진핑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과 싱가포르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통해 양국 모두 더 큰 발전을 이뤄내자"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역점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도 요청하면서 "양국이 상호 교류와 교통, 무역을 강화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해 육상과 해상 무역을 촉진하는 새로운 교역로를 건설하자"고 요청했다.
이에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건립을 지지하며, 대만 독립을 반대하고 중국의 안정과 번영을 염원한다"고 화답했다.
리셴룽 총리가 초청자인 리커창 총리와 최고지도자인 시 주석, 국회의장격인 장 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중국을 찾는 외국 지도자의 관례에 가깝지만 왕 서기와의 회동은 다소 이례적이다.
양국간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한 리 총리의 중국 방문 일정으로선 의외의 행보였다. 특히 내달 18일 열리는 중국 공산당의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왕 서기의 거취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상황이어서 더욱 주목됐다.
왕 서기는 상무위원 퇴임설과 유임설이 엇갈리는 가운데 최근 잇따라 공개활동에 나서면서 이번에는 외국 지도자와의 면담까지 나선 것이다. 차기 권력재편에서 자신의 역할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 현지 매체들은 리 총리가 중국의 반부패 사령탑인 왕 서기와 싱가포르의 수십년에 걸친 반부패 청렴문화와 관련해 그 비결과 대책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번 회동은 리 총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왕 서기가 이날 리 총리와 만나 "요즘 같은 때 중국을 찾아 나를 보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지침을 받아 오늘 당신을 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왕 서기는 이어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줄곧 싱가포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자신 역시 개인적으로 싱가포르와 교류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 서기는 지난 2008∼2012년 부총리 시기에 싱가포르와의 양국간 고위급 연례 대화를 여러차례 주재한 바 있다.
그는 또 리 총리의 부친인 고(故)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를 언급하며 "춘부장이 싱가포르를 이끌 당시 몇차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행운을 가졌다. 그는 정치 지혜가 충만한 명인이고 위인이었다. 그와 대화할 때마다 거둔 수확이 적지 않았다. 그의 서거에 매우 비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리 총리도 "19차 당대회로 바쁜 시기에 시간을 내 저와 대표단을 만나주신 것에 매우 감사하다. 더불어 중국과 싱가포르 관계와 양국 협력에 대한 관심에도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이들의 회동에 대해 한 중국 소식통은 "리 총리가 악화일로를 걸어온 양국 관계의 설정을 위해 현재 중국의 권력실세인 왕 서기를 만나 차기 권력재편 방향을 탐색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싸고 싱가포르가 중국의 대척점에 서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면서 양국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해 지난해 11월 홍콩 세관이 싱가포르 장갑차를 압류하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다.
싱가포르는 중국이 지난 5월 주최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회의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리 총리는 이에 따라 이번 중국방문을 계기로 중국 지도부를 모두 만나 양국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중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간 중재자 역할을 해온 싱가포르가 내년 아세안 의장국이 되기 때문에 양국 관계개선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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