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베일에 싸인 야전공병단 행적…행불자 소재 단서될까
"군이 중장비로 사람 담긴 자루 묻었다"…구체적 시민 제보
5월 단체 "야공단 행적은 미궁으로 남은 고속버스 사건과도 연관"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을 찾아 나선 5월 단체가 육군 야전공병단(이하 야공단) 행적에 주목하고 있다.
1980년 항쟁이 끝나고 암매장 추정 현장에서 굴착기를 봤다는 시민 제보가 나오고 있지만, 중장비를 운용한 야공단 작전기록은 공개된 적 없기 때문이다.
5·18기념재단은 5월 행방불명자 암매장지 발굴을 위해 19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야공단에 대한 기록을 찾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재단이 기존에 확보한 다른 군 자료에 따르면 광주에는 야공단 병력 872명이 배치됐다.
야공단은 5·18 당시 광주 외곽 경계와 파손된 도심 복구 등을 수행했다고만 알려졌다.
이들 병력은 3·7·11공수여단처럼 민간인 살상행위에 가담하지 않아 다른 20여개 부대와 마찬가지로 5·18 진상규명 과정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다.
재단이 야공단 작전기록을 찾아 나선 이유는 5·18 당시 전남 화순 너릿재 인근 암매장 추정 현장에서 굴착기를 봤다는 시민 제보가 잇달았기 때문이다.
최근 재단이 접수한 제보는 굴착기 5대를 동원해 군인들이 자루를 묻고 있었고, 사람 머리가 밖으로 나온 자루도 있었다는 등 내용이 구체적이다
5·18 민주유공자유족회는 1995년 무렵에도 다른 시민으로부터 유사한 제보를 받았다.
1995년 제보는 굴착기 숫자만 다를 뿐 상황과 장소가 최근 내용과 흡사하다.
유족회는 종일 또는 여러 날에 걸쳐 중장비가 증원됐다고 추정하며 제보들이 믿을만하다고 판단했다.
너릿재 주변은 주남마을 미니버스 사건 등 도심에서 임시 퇴각한 11공수 병력이 민간인 집단 학살을 자행한 지역이다.
주남마을 학살은 광주에서 전남 화순으로 향하던 17인승 소형버스에 가해진 무차별 사격으로 10명이 숨진 비극적인 사건인데 목격자들이 전하는 시신 수가 10구에서 27구까지 제각각이다.
재단은 시신이 나오지 않은 채 잊혔던 주남마을 인근 고속버스 사건이 너릿재 암매장과 무관하지 않다며 야공단 기록 확보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주남마을 미니버스 학살이 일어났던 날 육군 20사단 병력은 11공수와 임무 교대하고 주변을 정찰하다가 혈흔이 낭자한 채 소총탄피가 수북이 쌓인 고속버스 한 대를 발견했다.
목격자는커녕 탑승자조차 알려지지 않아 사건은 미궁으로 남았는데, 유족회는 계엄군이 미니버스와 고속버스에서 숨진 이들을 한데 모았을 때 시신 27구가 목격된 것으로 추정했다.
야공단 행적이 베일에 싸인 배경은 7공수가 6월 중순까지 광주에 머물렀고, 11공수는 서울로 떠났다가 일반인 또는 보병 복장으로 광주에 돌아왔다는 증언과도 연관 지어 추론할 수 있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민간인을 학살한 공수부대원이 증거인멸 차원에서 임시매장했던 시신을 발굴했다는 것은 기록과 증언을 통해 입증됐지만 이후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시신을 처리한 병력은 따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양래 5·18재단 상임이사는 "시민 제보와 군 기록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섬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임이사는 "군이 주남마을 근처에서 살해한 시민 시신을 광주나 화순으로 옮겨왔겠느냐"며 "대규모 암매장 현장에는 중장비를 투입했다는 게 합리적인 의심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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