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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푸짐하고 값싼 천안 병천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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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푸짐하고 값싼 천안 병천순대

가난한 서민 음식에서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천안=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사시사철 언제나 푸짐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순대국밥이다. 넉넉한 순대와 고기, 뜨끈하면서도 개운한 국물은 기온이 내려가는 가을과 겨울이면 더욱 구미를 당긴다.

순대 음식의 대표적 고장인 충남 천안시 병천면의 병천순대 거리. 병천시장과 잇닿은 이곳에서는 특유의 맛과 풍성한 영양을 지닌 순대 음식을 만끽할 수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기자가 현지를 찾았던 날, 병천면 소재지 한복판의 병천시장은 때마침 열린 오일장으로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시골의 전통장터 치고는 규모가 예상 밖으로 컸다. 7천여 명의 병천면 인구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이유는 대체 뭘까?

병천면은 천안삼거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따라서 예부터 이곳을 지나는 길손이 많았다. 교통의 요충지는 사람들의 발길로 항용 붐비기 마련. 조선 후기에 재래시장이 생기면서 이곳 병천에는 장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지금도 유동인구가 많아 주말이면 외지인 500~1천 명이 다녀가고, 독립기념관 등 주변에서 대형 행사라도 열리면 1천~1천500명이 찾아온단다.

병천시장의 또 다른 이름인 '아우내 장터'. 병천천과 광기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으로 병천(竝川)은 '두 개의 내를 아우른다'는 뜻의 순우리말 '아우내'에서 유래한다.

오일장이 열리는 매월 1일과 6일, 11일과 16일, 21일과 26일이 되면 면민은 물론 외지인들로 이곳 장터가 더욱 북적거리고 식당마다 대표 음식인 순대국밥을 먹어보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 한 집 건너 한 집이 순대 식당



병천천을 건너노라면 줄줄이 늘어선 순대 식당의 간판들이 손님을 반긴다. 길이 1km에 이르는 이곳 아우내순대길 주변에서 영업 중인 순대 식당은 모두 23곳이다. 왕복 2차선의 대로 양쪽에 한 집 건너 한 집이 순대 식당이다 싶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손님 유치 경쟁도 치열할 터. 어떤 식당은 식당 명을 거꾸로 쓴 대형간판을 지붕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어떤 식당은 주인과 인연이 있는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간판에 살짝 끼워 넣어 시선을 끈다.

이들 식당은 장날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문을 연다. 한때는 식당이 30개가 넘었으나 지금은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 그리고 장날이면 전국 곳곳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줄을 잇는다.

1950년까지만 해도 순대를 파는 곳이 극히 적었다고 한다. 이들 국밥집은 장날이 되면 야외에 좌판을 깔고 손님을 맞았다. 솥을 거는 부뚜막만 있으면 어디서나 팔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순대국밥이어서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에 값싸고 영양 많은 순대국밥은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대표 음식이었다. 국밥 한 그릇이면 그런대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우내 장터에 순대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그 무렵 이 지역에 햄 공장이 생기면서란다. 돼지고기를 취급한 햄 공장은 주재료인 살코기를 햄의 재료로 사용하고 내장 등 남은 부산물은 장터에 내다 팔았다. 시장상인들은 이 내장을 사서 각종 야채와 선지를 넣고 순댓국 등 관련 음식을 다양하게 조리해냈다.

지금의 식당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은 청화집. 1968년 현 위치에 간판을 처음 걸고 출발해 지금까지 4대째 운영하고 있다. 이어 충남집, 돼지네 등 식당들이 하나둘 뒤따라 들어선 것.

청화집의 이경란(65) 대표는 "1980년대만 해도 순댓집이 적었다"면서 "장날에만 순대 음식을 팔다가 1988년부터는 지금처럼 매일 영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시할머니 김일분(타계)-시어머니 송무자(90) 씨의 대를 이었는데 지금은 딸인 이연숙(41) 씨 부부에게 실무적인 운영을 맡기고 있다.

병천순대는 1990년대 초반 인근에 중소기업체들이 다수 들어서면서 더욱 각광받았다. 식당들이 급속히 늘어나게 된 건 당연지사였다. 특히 나라가 IMF 외환위기에 빠졌던 1990년대 후반이 되자 병천순대를 찾는 이들은 오히려 증가했고 식당들은 그만큼 번창할 수 있었다. 이는 싸고 푸짐한 순대국밥과 접시에 한가득 담겨 나오는 순대에 한 잔 술로 시름을 달래보려는 서민들의 마음과 딱 맞아서이기도 했다.

병천시장순대상인회의 김회명 회장은 "옛날에는 배고파서 먹었던 순대가 오늘날에는 별미 음식으로 즐긴다"면서 "서민음식이 대중음식으로 발전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됐다"고 말한다.







◇ 돼지 소창에 채소, 선지 등 푸짐하게 넣어



병천순대는 돼지의 창자 중 부드러운 소창을 이용해 만든다. 이는 소의 내장도 쓰는 다른 지역의 순대와 다른 점이다. 깨끗하게 손질한 돼지 소창에 양배추, 양파, 피망, 파, 마늘, 생강, 새우젓 등 10여 가지의 속 재료를 고루 버무려 넣고 삶는다. 집집이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다른 지역의 순대에 들어가는 당면은 사용하지 않거나 조금만 넣는다고.

순대의 맛을 극대화하는 요소 중 하나는 국물이다. 이 육수는 대형 가마솥에 돼지 사골을 비롯해 생강, 대파, 오가피 등을 넣고 12시간가량 푹 끓여 만들어낸다. 생강, 대파 등이 들어가면 소창 특유의 냄새를 없앨 수 있단다.

다시 말해 순대와 육수가 갖은 양념들과 결합해 맛깔스러운 순대 음식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대개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순대를 손으로 직접 만드는데 그 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식당주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병천순대 음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얀 사골국물에 순대를 숭숭 썰어 넣은 순대국밥과 돼지 머리 고기, 간, 혀, 볼살, 오소리 등의 다양한 부속을 순대와 함께 접시에 듬뿍 얹은 모둠 순대가 그것이다. 여기에다 고추 양념 등을 추가해 얼큰한 맛을 내는 얼큰이 순대도 취향에 따라 별미로 즐길 수 있다.

이들 음식의 상차림은 비교적 단출하다. 김치와 깍두기, 새우젓, 양파 장아찌가 기본반찬으로 올려진 가운데 고추 다대기, 들깨, 후추, 소금 등의 양념을 기호에 따라 찍어 먹거나 얹어 먹기도 한다. 순댓국은 국물이 뽀야면서도 부드러워 어린이 등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주객이라면 순대 음식에 막걸리나 소주 등 술도 한 잔 걸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음식값은 병천시장의 식당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순대국밥의 경우 한 그릇에 7천원으로 통일돼 있고 모둠 순대는 한 접시에 1만~1만2천원이다.

순대 식당에서 만난 손님들은 대체로 순대 음식에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추석을 앞두고 성묘 겸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김윤권(82·서울) 할아버지는 "매년 한 번씩은 이곳 순대 식당을 찾는데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순댓국과 속 맛 좋은 모둠 순대를 저렴한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부친의 고향 방문차 가족 나들이에 나선 구동현(44·하남) 씨도 "이곳에서 순대를 먹을 때마다 고향의 맛이 느껴진다"며 '부드러운 듯 쫄깃한 순대를 국물에 말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행복해진다"고 흡족해했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국내외 곳곳에는 병천순대 음식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국내에만 1천여 곳의 식당이 병천순대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13년 첫 병천순대점이 들어선 미국 뉴욕 등 외국에서도 병천순대 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순대는 돼지 순대뿐만 아니라 동태 순대, 오징어순대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순대의 역사도 생각보다 깊은데 조선조 후기의 전통 우리 음식을 분류·정리한 '시의전서'에 순대가 언급돼 있을 정도다.

이 책에는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빨아 숙주, 미나리, 무를 데쳐 배추김치와 함께 다져서 두부를 섞는다. 파, 생강, 마늘을 많이 넣고,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등 갖은 양념을 넣고 돼지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는다. 부리를 동여매고 삶아 식혀서 썬다"고 언급돼 있다. 특히 숙주나물, 배추김치, 무 등을 섞어 조미한 뒤 돼지 피를 섞어 돼지 창자에 채워 동여매어 삶은 '도야지 순대'가 나와 요즘 순대와 큰 차이가 없다 싶을 정도다.







◇ 병천순대 먹고 가볼 곳 '유관순 열사 사적지'



병천에 가면 순대 음식도 즐기고 역사 현장도 둘러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그 대표적 유적지로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와 생가를 꼽을 수 있다. 병천순대 거리에서 차로 3~4분만 가면 매봉산 정상을 사이에 두고 유관순 열사의 사적지와 생가가 있다. 이 사적지는 병천순대 거리 등과 더불어 천안의 12경 중 하나로 꼽힌다.

열사가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아우내 장터도 가볼 곳이다. 이곳에서 정월 대보름이면 아우내 장터 줄다리기 행사가 펼쳐지고, 매년 음력 5월 5일 무렵이면 병천단오축제 등 민속놀이를 볼 수 있다.

이밖에 김시민장군 유허지, 조병옥 박사 생가 등을 병천면에서 탐방할 수 있다. 이곳에서 지척의 거리인 독립기념관, 홍대용과학관 등 천안의 대표 명소를 둘러봐도 좋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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