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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 "무대는 성장통…이젠 희망의 노래를 나눠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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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 "무대는 성장통…이젠 희망의 노래를 나눠야죠"

전국투어 '바람' 개최…"날 지배하는 것은 17살 때 감성"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인기가수 한영애입니다."

가수 한영애(60)의 인사에 작은 웃음이 피었다. 밝은 표정으로 들어선 그의 톤은 낮지만 경쾌했다. 앞머리만 초록빛으로 물들인 헤어스타일은 '소리의 마녀'란 수식어와도 꼭 어울렸다.

그는 지난 9일 여수를 시작으로 전국투어 '바람'을 시작했다. '바람'은 2014년 11월 발표한 6집 '샤키포'의 수록곡에서 따왔다.

"바람에는 '윈드'(Wind)란 뜻도 있고, '위시'(Wish)란 뜻도 있죠. 남녀의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곡이기도 하죠. 힘들 때 '내가 뒤에 있잖아'라고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노래합니다."

6집이 출시된 해는 세월호 참사로 사회가 슬픔과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다.





19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만난 한영애는 "당시 나도, 모든 사람의 마음도 무거워서 '이런 음반이 나왔다'고 알리면서 음악을 나누기 어려웠다"며 "그리고 1, 2년이 흘렀고 올해 초부터 이 앨범에 담긴 노래를 부르게 됐다. 이 음악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싶어서 내년 하반기까지 투어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인 아픔과 마음의 상처는 쉽게 극복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많이 편해지면서 음악을 나눌 힘을 되찾았다고 강조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은 6집의 곡들도 비로소 세상과 어울렸다고 한다.

"6집 작업 때 맑고 희망적인 가사만 나왔어요. 사람이 절망스럽고 기댈 데가 없으면 희망이란 지푸라기를 잡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죠. '샤키포'를 지금 부르니 동질감, 연대감의 노랫말이 좋더라고요. 유행가는 흘러가는 노래란 말이 있지만 지금의 마음으로 들으면 새 노래가 되죠. 이번 투어에서 그 노래들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싶었죠."

'내 체온을 의심하면 안 돼/ 뒤돌아보지 마 겁먹을 거 없어/ 너의 꿈을 버리지 마/ 기적은 일어날 거야'('샤키포' 중)

그는 지난해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회자됐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란 '조율'의 가사는 희망을 염원하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감동을 안겼다. '조율'은 한돌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한영애가 개작해 완성한 곡이다.

"광화문에 자주 나갔지만, 일반 대중의 마음과 다를 게 없었어요. 절실했다고 할까요? 가수이니 절실한 연대감으로 제 마음을 전달한 것뿐이죠. 오로지 연대감으로요."

촛불집회 무대에는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지만 40여 년을 노래한 그에게 무대는 여전히 일상의 공간을 넘은 특별한 장소다. 그는 "무대는 나를 성장하고 발전시켜 주는 성장통 같다"고 비유했다.

"무대에선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연습을 잘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보이죠. 마치 거울 같아요. 앞서 여수 공연 때 그걸 새롭게 느끼면서 내달 서울 공연 때는 무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고요. 저를 또 발전시켜 주니까요."

그러면서 평생 무대에 선 자신의 생각과 정서를 지배한 것은 "17살 때의 감성"이라고 고백했다.

청소년기 그는 말수가 적고, 친구도 별로 없는, 스스로를 '왕따'시키는 소녀였다. 대신 그는 학교 뒷동산 아카시아 나무 밑에 누워 '나비는 왜 소리 없이 날아오나, 햇빛은 어디서부터 날 행복하게 비춰주나'란 그만이 가는 판타지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그땐 1970년대 압박받던 시절이어서 늘 판타지가 있었다"며 "사실 6집에서 '바람'을 부르기 싫었는데, 어느날 17살의 판타지가 아니면 부를 수 없는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퓨어'(순수)한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때부터 이 곡에 애정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안무나 코러스 없이 오직 그의 보컬과 밴드의 수려한 연주만으로 무대를 채운다. '소리의 마녀'란 수식어답게 포크, 록, 블루스, 테크노 등을 아우르며 내공을 뿜어낸다.

1975년 혼성 통기타 그룹 해바라기 1집으로 데뷔한 그는 1985년 솔로 1집 '여울목'을 냈고 1986년 프로젝트 그룹 신촌블루스의 창단 멤버로도 활동했다. 통기타 시절엔 '한국의 멜라니 사프카'로, 록에 천착할 때는 '한국의 재니스 조플린'으로 불렸다.

그는 "음악적으로 장르가 섞인 걸 좋아한다"며 "6집 때 컴퓨터를 배워서 습작처럼 미디로 만든 곡이 있는데 처녀작이 아까워서 날 것 그대로 담았다. 록부터 탱고, 테크노까지 다 섞였는데 그런 음악을 좋아한다. 얼마 전 국악을 한 곡 들었는데 어울릴 수 없는 스케일이 어울리더라. 국악은 들을수록 묘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때(1977~1985년)는 극단 자유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연극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해바라기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미치도록 록이 하고 싶었고, 록을 바탕으로 한 연극에서 춤추고 소리 지르고 무대에서 뒹굴면서 '나와 닮은 게 여기 있구나'란 생각을 했다.

수년간 연극 무대에서 보냈던 그는 캐릭터 창조에 대한 딜레마가 찾아왔고 외국 여행을 하면서 다시 자신을 닮은 일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외국을 다녀와서 이정선 씨에게 '날 닮은 일이 뭔지' 고민이 있다고 하자 '노래 있잖아'라고 했죠. 그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아, 나에겐 음악이 있었지'라고요. 그날부터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고 음악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 세계에 몰입하게 됐어요."







이제 그는 음악이 나날이 즐거워진다고 했다.

"음악을 내려놓을 수 없다. 더 고공행진"이라고 웃은 그는 "일상에서 많은 것이 걸러지고 단순해지고 음악밖에 안 남았다. 열심히 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잠자는 시간 빼고 그 생각만 한다. 그래서 더 절실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대란 공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전 공연 전날 가서 1, 2층을 다 둘러보죠. '그곳의 관객이 무대를 바라볼 때 어떤 각도일까, 나의 고개 각도는 어느 정도면 되겠다'부터 비상구 위치까지 체크하는 습관이 있어요. 공간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쳇말로 맞장뜬다고 할까요? 하하하."

서울 공연은 10월 7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6만6천~7만7천원. ☎ 1544-1555.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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