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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경이로움 남기고 떠난 '행복한 사람'…조동진 추모공연(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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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경이로움 남기고 떠난 '행복한 사람'…조동진 추모공연(종합)

추모 무대로 꾸며진 푸른곰팡이 공연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장필순·한동준·조동희 등 11팀 눈물 참고 노래…전시도 마련돼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아름다운 추모였다.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토해내지도 않았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토로하지도 않았다. 감정을 절제한 무대는 정적이면서도 진심이 느껴졌고, 그 뭉클함은 파도처럼 서서히 밀려왔다가 쓸려갔다.

16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지난달 28일 세상을 떠난 조동진 추모 공연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가 열렸다.

당초 이 무대는 조동진과 레이블 푸른곰팡이 뮤지션들의 연합 공연으로 계획됐다. 푸른곰팡이는 조동진이 1990년대 이끌던 음악공동체 하나뮤직 출신들이 다시 모인 기획사다.

그러나 방광암으로 투병하던 조동진은 후배들과의 무대를 20일가량 앞두고 세상과 작별했다. 1천석 공연이 매진됐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떠난 고인에겐 13년 만의 공연이자 마지막 무대가 될 자리였다.

공연 전 대기실에서 만난 장필순은 "원래 추모 공연이 아닌데 추모 무대가 됐다"며 "아직은 형님과 같이 있는 느낌으로 실감을 못 하겠다. 댁에 계실 것 같고…"라고 말했다.

하나뮤직이 배출한 1호 가수 정혜선은 "음악과 생활이 일치하는 분이었기에 존경했다.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조동진의 여동생 조동희는 "웃으면서 즐겁게 준비한 공연이 추모 무대가 됐지만 울지 않고 아름답게 보내드리기로 했다"고 애써 웃었다.

조동진이 직접 찍은 사진과 편지로 시작된 이날 공연은 내내 그가 무대에 함께 있는 느낌이었다. 고인을 '형님', '선배'라고 따르며 영향을 받은 후배들의 음악에선 그의 잔향이 짙게 배어있었다.

"좋은 노래, 좋은 소리란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좋은 마음은 꽃의 향기 같아서 넓게 넓게 퍼져나간다"는 생전 그의 말처럼.




조동진의 음성으로 '나무가 되어'가 흘러나오자 소히, 새의전부 등 '조동진 사단'의 막내 라인들이 이 곡을 함께 부르면서 무대가 열렸다.

조동희는 오빠에게 시타르(인도 전통 현악기) 연주를 꼭 들려주겠다는 약속대로 시타르를 연주하며 오빠에게 바치는 노래 '그'를 예쁜 음색으로 노래했다.

오소영은 "공연에서 형님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었던 곡이다. 듣고 계시리라 생각한다"며 기타를 치면서 '작은 배'를 들려줬다.

하나뮤직 시절 조동진과 끈끈했던 한동준이 '당신은 기억하는지'를 부를 때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추모 메시지들이 영상을 채워 뭉클함을 더했다.

기타리스트 이병우는 고인의 콘서트 때 반주했던 곡을 수려한 테크닉으로 연주했다. 그는 "가까운 분이 (형님이) 돌아가신 날 꿈을 꿨다.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용의 얼굴이 형님의 얼굴이었다고 한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공연 후반에 무대 오른 장필순은 조동진의 곡을 부를 때 한동안 객석 정면을 바라보지 않았다. 옆모습으로 앉거나, 뒷모습으로 서서 '제비꽃'과 '겨울비'를 부르고는 "선배님의 생각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이 담긴 무대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함께 서기로 약속한 무대여서 형님 대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선배님이 이야기해준 대로 후배들이 자신들의 소리로 노래했다. 눈물을 잘 참고 노래해 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인사했다.

장필순과 한동준, 이규호가 고인의 대표곡 '나뭇잎 사이로'를 부를 때는 결국 한동준이 울컥해 목이 메었다. 노래를 잔잔히 따라 하던 관객들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출연진 전원이 추억의 흑백 사진을 배경으로 마지막 곡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를 선사하자 마지막 인사를 조동진의 생전 영상이 대신했다.

"소리를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는 상황이 늘 저에겐 기적처럼 느껴져요. 그런 기적을 이루게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더클래식의 박용준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선창한 앙코르곡 '행복한 사람' 무대에선 관객들이 LED 촛불을 일제히 흔들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아~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객석에는 조동진의 두 아들과 동생 조동익이 자리해 이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공연은 평소 수수하고 느리고 낮게 산 조동진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소리와 교감에 천착한 고인의 뜻을 받든 듯 화려한 조명도, 무대 연출도 없이 나무, 강, 바다, 하늘 등 자연주의적인 영상을 배경으로 소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한 편의 시 같은 노랫말에 깃든 성찰과 사색, 따뜻한 고독, 관조적인 시선은 뭉근하게 공연 전체를 지배하며 위로를 안겼다.

소리로 맺어진 인연의 무게를 아는 고인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쓴 편지에서도 '고독한 연주자'로 불린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말을 인용해 "오늘 저녁의 이 작은 만남을 통해서, 경이롭고 고요한 세계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공연장 밖 로비에는 추모 전시회도 함께 마련됐다. 조동진의 연대기를 비롯해 하나뮤직의 전기(1992~1995)와 후기(1997~2004), 푸른곰팡이(2011~)가 발표한 앨범 재킷이 전시됐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작업한 리마스터링 앨범을 감상하는 코너가 마련됐다.

한동준, 조동익, 장필순, 조규찬, 김광민, 정원영, 낯선사람들, 김창기, 이규호, 더 버드, 오소영, 윤영배 등의 앨범 재킷은 수많은 창작자를 일군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 조동진의 결실을 보여줬다.

젊은 날 그의 음악을 들으며 추억을 공유한 대학 동창들, 성인이 될 딸과 함께 온 50대 어머니 등 관객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고인을 기억했다.

관객들이 메시지를 남기는 벽에도 쪽지 글들이 붙었다.

"당신은 신기하게도 '나뭇잎 사이로' 가을이 스며드는 계절과 함께 떠나버렸습니다. 그립습니다. 기억합니다."(한 팬의 메시지)




공연이 끝난 뒤 조촐한 뒤풀이에는 푸른곰팡이 뮤지션들뿐 아니라 음악가 정원영,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 강승원, 동물원 출신 가수 김창기, 싱어송라이터 김현철 등 고인의 부재를 애달파한 후배들이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이들은 지난 6월 푸른곰팡이의 대표가 된 조동희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다.

"어깨가 무겁겠지만, 네가 형님의 뒤를 이어 푸른곰팡이를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

조동희는 끝내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푸른곰팡이 연합 공연은 12월 고양시에서 한 번 더 열린다.

mim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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