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슈]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재앙이 된 기업 유치
연간 8천억원대 매출로 지역경제 견인한 조선소 가동 중단
86개 협력업체 중 56개 폐업…노동자 5천250명의 90% 실직
(전주·군산=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지난 7월 문을 닫았다. 2010년 공식 준공된 지 7년여만이다.
군산조선소의 가동 중단이 남긴 상흔은 크고 깊다.
50개가 넘는 협력업체가 폐업했고 5천명에 가까운 가장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자들이 떠나면서 상권은 피폐해졌고 부동산 경기도 차갑게 식었다.
비약적인 지역경제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유치가 이제는 도시 전체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대재앙이 돼버린 것이다.
◇ 꿈과 희망에 부풀게 했던 군산조선소
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를 세우기로 한 것은 2007년이다. 조선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주문량이 쇄도하던 시절이다.
현대중공업이 공장 증설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전북도는 군산시와 함께 전담팀을 꾸려 유치작업에 들어갔다.
열악한 지역경제 상황을 타개하고 가파르게 진행되는 인구 감소세를 멈추게 할 대안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타 시·도와의 치열한 유치전 끝에 군산조선소 건립이 결정됐고 착공 2년여만인 2010년 3월 드디어 문을 열었다.
군산조선소의 위용은 대단했다.
군산시 소룡동 매립지 181만㎡의 부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갖췄다.
도크는 축구장 4배의 크기로, 25만t급 선박 4척을 한꺼번에 건조할 수 있는 규모다. 골리앗 크레인은 한 번에 1천650t, 자동차 400대를 들어 올릴 수 있다.
부지 매입비 2천억원과 토목과 건축 설비 공사비 9천300억원 등 모두 1조2천억원이 투입됐다.
작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사내와 사외 협력업체는 86개, 노동자는 5천250여명에 달했다.
전북도민과 군산시민의 꿈과 희망은 저절로 부풀어 올랐다.
◇ 군산조선소와 함께 달아오른 지역경제
군산조선소는 매년 10척 안팎의 선박을 건조했고 매출 총액도 연간 8천억원을 넘나들었다. 작년에는 무려 16척을 건조하며 1조1천41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북 전체 제조업의 12.3%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고 생산 유발효과도 2조2천억원이나 됐다. 군산시로 좁혀보면 군산조선소를 비롯한 조선 분야의 노동자 수가 군산 전체 노동자의 24%에 달했다.
식당과 도시락, 통근버스 업체에 쓰는 돈이 연간 250억원 안팎에 이를 정도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고 지대했다.
군산조선소의 영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파트와 땅값 상승률이 한때 전국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부동산 경기가 달아올랐고, 협력업체가 잇따라 들어오면서 산업단지도 동났다. 전문계 고교와 대학들은 앞다퉈 조선업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인력 양성에 나섰다.
노동자 가족을 포함해 2만명 넘는 인구 유입 효과를 내면서 지역경제는 그야말로 호시절을 누렸다.
◇ '잔치'가 끝난 자리에는 한숨 소리만
군산조선소의 폐쇄는 작년부터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조선업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다.
전북과 군산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만큼 폐쇄를 막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존치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에 100만명이 참여했고 송하진 전북지사까지 나서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의 집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런 염원을 뒤로 한 채 현대중공업은 일감 부족과 경영 악화를 이유로 들며 끝내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작년 4월 86개이던 협력업체 가운데 56곳이 폐업했고 5천250명의 노동자 중 4천709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 가족들을 포함하면 2만여명이 생계 위기에 내몰렸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뤘던 군산조선소 인근의 식당과 술집, 유흥업소도 직격탄을 맞았다.
원룸들은 임대료를 30∼40%씩 낮췄지만, 절반 이상이 비어있다.
군산시 인구도 최근 1년여 만에 2천100명이 줄며 27만6천200여명으로 주저앉았다.
전북도 관계자는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만큼 폐쇄가 가져오는 충격파도 크다"며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은 지역경제를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넣는 대재앙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 도마 위 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
군산조선소 폐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처사라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수만 명의 생계와 지역경제의 명운이 달려있는데도 기업 이익만을 앞세운 것은 부도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주 물량의 일부를 군산조선소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상생'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 저버렸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이 결정된 뒤 문동신 군산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기업이 어렵다고 대책 없이 문을 닫고 근로자를 거리로 내모는 것이 기업 윤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경영 효율성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역경제 유지 차원에서 존치해야 마땅하다"고 성토했다.
국민의당 전북도당도 "각종 비판과 비난에도 국가 기관이 사용하는 부지를 용도 변경해 조선소 부지로 제공하고 투자촉진 조례에 따라 200억원을 지원했다"면서 "특혜를 받은 군산조선소가 영업이익만을 챙긴 채 이제는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양심까지 팔아먹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전북도와 군산시 등은 노후선박 교체, 공공선박 조기 발주, 선박펀드를 활용한 물량의 군산조선소 배정과 같은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지원대책을 내놓았지만 알맹이가 빠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진홍 전북도 정무부지사는 정부의 대책 발표 직후 "우리는 일관되게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을 요구했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아쉽다"면서 "제1순위는 군산조선소의 재가동이며 근로자와 협력업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대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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