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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엔 자존심 없죠"…'헝그리 골퍼' 박정민의 골프는 이제 1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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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엔 자존심 없죠"…'헝그리 골퍼' 박정민의 골프는 이제 1R

대리주차·공장 알바 하면서 5년 만에 코리안투어 복귀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육상선수 임춘애의 감동 스토리는 당시에도 와전된 '소설'로 판명됐지만, 지금엔 더욱 찾기 힘든 이야기다. 전반적인 생활 수준도 높았지만 웬만한 종목에서 모두 자금 투자와 성과가 비례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여전히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한 골프에선 더 그렇다. 수많은 아이가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일찌감치 골프에 뛰어드는 요즘엔 가난한 어촌 소년 최경주의 성공 스토리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그런 골프에서 보기 드물게 '헝그리 정신' 돋는 스토리가 등장했다.

주인공은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활약하는 박정민. 최근 두 차례 대회에서 모두 1라운드 공동 선두로 출발해 생애 처음 기자들 앞에 선 그는 대리주차, 공장 알바, 공원 청소 같은, 골프선수 입에서 듣기 힘든 단어들을 꺼내 주목을 받았다.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박정민은 "'헝그리 골퍼' '불굴의 골퍼'라고 하시더라"며 "아직 우승도 한 번 못 했는데 이런 이야기들로 알려지게 돼 좀 그렇다"고 쑥스러워했다.

아직 24살이지만 박정민의 '골프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어렸을 때는 그도 넉넉한 집에서 자랐다. 먼저 입문한 9살 연상 형을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연스럽게 골프를 시작했다.

한때 고향 제주도에선 '골프 신동' 소리도 들었다. 정식 레슨을 한 번도 안 받고 아마추어 고수인 아버지에게만 배웠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도 대회에서 27번 우승하고 일송배 전국주니어선수권에선 준우승도 했다.

2011년 투어 프로 자격을 얻고 처음 나간 시드 선발전도 통과했다.

"어렸을 땐 골프가 딱히 좋지도 않았고 그냥 시키니까 했어요. 시합 나가면 우승 욕심이 생겨서 열심히 했고요. 잘 되니까 '골프가 너무 쉽구나' 싶더라고요. 자부심이 자만이 돼서 연습도 제대로 안 했죠."

너무 이른 나이에 얻은 성취로 우쭐했던 박정민은 데뷔 첫 해인 2012년 처절하게 좌절을 맛봤다.

첫 출전한 대회 1라운드에서 14오버파를 쳤다. 그 해 6번 대회에 출전해 딱 1번 예선을 통과했다. 공동 57위로 160만원의 상금을 거머쥔 것이 그 해 벌어들인 돈의 전부였다.

"연말 시드전에는 나가지도 않았어요. 제주도에선 잘 친다는 소리 들었는데 떨어질까 봐 자신이 없어서 아프다는 핑계로 안 나갔죠."

실패를 경험한 박정민은 독한 마음을 품고 집을 떠나 서울로 왔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이미 가세가 기울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2부 투어 참가 비용과 연습 비용 마련을 위해 골프 레슨을 시작했다.

하루 13시간가량 레슨을 하고도 한 달에 100만원 밖에 벌지 못하자 다른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식당 대리주차 일도 하고, 아침에 인력시장에 가서 공장 노동이나 낙엽 치우기, 벽돌 나르기를 하면서 일당을 받기도 했다.

잠은 하루 4∼5시간밖에 못 자고 끼니는 이동하면서 해결했다.

그렇게 모은 돈의 일부는 집에 보내고 남은 돈으로 2부 투어에 참가하고, 쉬는 날 필드에 나갔다. 자기 전에 맨손 스윙을 500개씩 하거나 이미지 트레이닝도 했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마음이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밤낮없이 일하면서, 같이 골프 치던 친구들이 경기하는 것을 TV로 보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유독 자존심이 셌던 그였기에 대리주차를 하면서 겪은 온갖 '갑질'도 괴로웠다.

"골프를 포기했으면 제주도 다시 가서 레슨만 하면서 편하게 지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선수의 꿈이 있으니 서울에서 힘든 시간을 버텼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냥 하기 싫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TV를 틀어 골프 채널을 보면 '하기 싫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매해 코리안투어의 문을 두드리던 박정민에게 은인도 나타났다. 레슨을 하면서 알게 된 김경훈 알엠케이 사장이 '어린 애가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는 것을 보니 도와주고 싶다'며 후원자를 자청했고, 덕분에 지난 한 해 연습에 전념한 끝에 5년 만에 다시 시드를 얻었다.

5년 만에 돌아온 코리안투어에서 박정민은 철없던 2012년과 사뭇 달라졌다.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골프의 절실함, 소중함을 느끼게 됐고, 자만심도 버렸다. 사소한 일도 고맙게 여기게 됐다.

"꿈에는 자존심이 없어요. 전 정말 자존심만 센 문제아였는데 자존심을 세우면 꿈을 이룰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돈이 없어서 골프를 못 친다고 하지만 일용직 이틀만 해도 라운딩할 돈을 벌 수 있어요. 힘든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지난 5년의 노력이 약이 되고, 달라진 마음가짐이 변화를 가져와 박정민은 최근 3개 대회에서 10위, 9위, 17위를 했다. 2부 투어에서 뛸 때는 상금보다 늘 경비가 더 많이 들었지만 올해는 5천만원 가까이 상금도 모았다.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다시 코리안투어에 올라왔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하다는 박정민은 자신의 골프 인생이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자동차로 따지면 시동도 안 걸고 이제 막 차 키를 꽂은 상태인 것 같아요. 예전엔 얼른 뜨고 싶다는 생각에 노력은 안 하고 목표만 저 높이 있었어요. 지금은 말을 아끼게 됐어요. 다음 달에 처음으로 고향 제주에 가서 대회를 하는데 그때 가족들 앞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싶습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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