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에게 묻다] 절단 위험 큰 '당뇨발'…"무관심이 천적"
당뇨병 환자, 매일 발 상태 점검하고 위생·보호에 관심 가져야
(서울=연합뉴스) 서상교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 #. 50대 초반에 당뇨병을 진단받은 이용운(60)씨. 진단 당시만 해도 당뇨병이 심하지 않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규칙한 식습관과 잦은 음주로 식단조절을 거의 하지 못한 채 1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휴가지에서 문제가 생겼다. 맨발로 바닷가를 걷다가 생긴 작은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곪더니, 급기야 엄지발가락 끝이 까맣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발의 모양도 변해가는 것 같았다. 흔한 당뇨병 합병증인 '당뇨발'이었다. 당뇨병 때문에 발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씨는 결국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당뇨발 초기여서 발이나 종아리를 많이 절단하지 않은 채 최소한의 수술만 받고 보행에 지장 없을 정도로 발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씨의 경우처럼 당뇨병을 오래 앓으면 혈액 순환이 잘 안 되고 감각이 둔해진다. 또 세균 감염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져 가벼운 상처도 궤양 등의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인 게 당뇨족, 당뇨성창상, 당뇨병성 족부궤양 등의 다양한 이름을 가진 당뇨발이다.
전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의 15∼25%가 발에 궤양이 생기고, 30초에 한 번씩 당뇨발 절단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보통 당뇨발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면 2년 안에 다른 쪽까지 절단할 확률이 50%나 된다. 다리를 절단한 당뇨병 환자가 5년 후에 사망할 확률은 39∼78%에 달할 정도로 당뇨발은 무서운 합병증이다. 당뇨병 환자에게 이런 합병증이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혈액순환장애와 함께 혈관 속 높은 당 수치가 신경세포를 죽여 감각을 무뎌지게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발의 감각이 이상한 정도의 느낌이 들지만, 차차 감각이 마비돼 상처가 생겨도 모른 채 방치하게 된다. 이게 염증으로 발전해 심해지면 절단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는 매일 발의 상태를 점검하고 발의 위생과 보호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당뇨발 중 상당수는 발톱을 깎다가 생기는 상처, 꼭 끼는 신발로 인한 물집이나 굳은살 등의 사소한 상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당뇨발 증상은 신경장애로 인한 이상 감각이다.
초기 증상은 발이 시리고 저리면서 화끈화끈하다. 환자 개개인에 따라서는 발에 무언가 붙어 있는 듯한 느낌이나 밟을 때 마치 모래나 구슬 위를 걷는 듯한 이상 감각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이상 감각과 통증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환자들도 있다.
신경이 완전히 파괴되면 발의 감각이 둔해진다. 이렇게 되면 발에 상처가 나고 다치거나 고름이 잡혀도 본인은 아픈 줄 모른 채 지내다가 상처가 커지고 심해져서야 문제를 인식한다.
또 자주 발이 붓고 피부에 땀이 나지 않아 피부가 건조해지고 갈라져서 상처가 나는 경우도 많다.
운동신경 이상으로 인한 증상으로는 발가락의 작은 근육들이 마비되면서 발생하는 발가락의 변형을 꼽을 수 있다. 이 경우 신발이 잘 맞지 않고 굳은살이나 상처가 잘 생긴다. 반면 발이 시리거나 찬 증상이 나타나고, 발가락이 갑자기 까맣게 썩는 건 당뇨병에 의한 혈액순환장애 때문이다.
당뇨병을 앓은 기간이 오래됐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는 사람은 당뇨발 합병증 위험도가 더욱 높다. 만약 발의 색이 붉거나 검게 변하는 경우, 수포나 궤양 등의 사소한 변화가 있다면 병원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당뇨발의 치료는 크게 보존적 치료와 수술로 나눌 수 있다.
보존적 치료는 드레싱으로 육아 조직 및 혈관의 생성을 돕는 방식이다. 여기에 혈관 확장제, 조직의 재생을 돕는 상피세포 성장인자(EGF), 고압산소 치료 등을 통해 상처의 치유과정을 촉진한다.
수술적 방법으로는 감염되고 죽은 조직을 수술로 제거한 다음 건강한 조직으로부터 상처 치유가 시작되도록 하는 절제술과 크고 깊은 상처 조직을 다른 부위의 살로 덮어 주는 재건수술이 있다.
통증이 없거나 심하지 않으면서 장기간 지속적으로 족부의 부종과 변형이 발생하면 '당뇨병성 신경관절병증'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뇨병성 신경관절병증은 흔히 '샤콧씨 관절'로도 불린다. 이 질환이 생기는 병리 메커니즘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자율신경계 이상 또는 다른 이유로 미세 혈류와 골 대사가 증가하고, 골내 칼슘과 같은 무기질이 빠져나가면서 부종이 심해지고 뼈가 약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당뇨병 환자 가운데 샤콧씨 관절 발생률은 0.08~7.5%로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초기에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면 보행이 어려울 정도의 변형이 발생하기도 하며, 골 부종과 파괴가 골수염으로 오인돼 절단 등의 부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샤콧씨 관절은 발생 후 수개월이 지나면 진행을 멈추고 변형이 고정되는 만큼 조기에 진단을 내리고 변형을 예방하기 위한 보존적, 수술적 치료를 시행하는 게 기본 원칙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부분의 당뇨발이 매우 작은 문제에서 비롯되고, 초기에 제대로만 관리하면 심각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관절은 한번 변형되면 치료가 더욱 어렵고, 결국 절단으로까지 악화할 수 있는 만큼 당뇨병 환자가 조금이라도 발에 이상이 생겼다면 이른 시일 안에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는 게 바람직하다.
◇ 서상교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당뇨발에 대한 연구성과로 2014년 세계족부족관절학회에서 학회장상을 받았다. 프로야구 LG트윈스 필드 닥터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당뇨병센터 내에 당뇨족부질환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당뇨발, 발목 관절염, 평발, 무지외반증 등의 족부 질환 환자를 주로 진료하고 있다. 당뇨발의 예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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