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로힝야족 아이들의 무덤 된 월경 난민선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미얀마 정부군과 로힝야족 반군단체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의 유혈충돌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피란길에 오른 아이들이 난민선에서 집단으로 수장돼 우려를 낳고 있다.
1일 현지 언론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전날 미얀마와 방글라데시를 가르는 나프 강에서는 최근 이틀간 로힝야족 난민을 태운 2척의 선박이 뒤집혀 2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가운데 12명은 어린이였고 나머지 9명은 여성이었다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서는 지난 25일 ARSA 미얀마 경찰초소 습격 사건 이후 미얀마군이 반군 소탕작전에 나서면서 양측간의 유혈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곳곳의 마을이 불타고 반군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총격과 포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을 피해 달아난 로힝야족 난민들은 나프강을 건너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운 좋게 살아남은 난민은 수심이 얕고 강폭이 좁은 지역을 걸어서 건넜지만,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에 제지당한 사람들은 폭이 최대 3㎞에 달하는 강 하구를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작은 목선(木船)에 정원보다 많은 난민이 몸을 싣기 때문에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기를 맞아 벵골만 부근의 파도가 높은 가운데 수영을 할 수 없는 어린아이와 여성들은 배가 뒤집히면서 고스란히 죽음을 맞았다는 게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뒤집힌 보트에 탔다가 운 좋게 생존한 샤 카림씨는 AFP통신에 "누구도 파도가 치는 상황에서 항해하는 방법을 몰랐다. 큰 파도가 배를 출렁이게 했고 우리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고 사고 순간을 떠올렸다.
또 다른 생존자인 사미라(19)는 "오빠가 수영할 줄 알았기 때문에 가족 몇 명을 구했지만, 수영을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은 구조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미라와 함께 배를 탔던 22명의 가족과 친지 가운데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석유통을 부여잡은 채 익사 위기를 넘긴 자히드 시디크도 "죽은 사람들은 수영을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미얀마군은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학살과 방화가 '테러범'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사선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도피한 난민들과 목격자들은 민간인을 향한 미얀마군의 잔혹행위를 비난한다.
뒤집힌 보트에서 용케 살아남은 사미라도 "미얀마군이 마을에 들어와 집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쐈다. 그래서 우리는 도망쳤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국경수비대 현장 지휘관인 아리풀 이슬람은 "난민선이 뒤집히면서 2명의 아이와 2명의 여성이 숨졌다. 당시 미얀마 국경수비대원은 보트를 향해 발포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州)에서는 로힝야족 무장단체인 ARSA가 수백명의 대원들을 동원해 30여개의 경찰초소를 급습하고 군기지 침투를 시도했다.
미얀마 정부는 ARSA를 외부세력의 도움을 받는 테러집단을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117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ARSA의 사령관을 자처한 아타울라 아부 암마르 주누니는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서 "아라칸(라카인주의 옛 명칭)은 로힝야족의 땅이며, 잔혹한 미얀마군에 맞서 방어전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로힝야족 유혈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은 미얀마 정부군에 로힝야족 민간인과 구호단체 활동가 등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이양희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도 계속되는 유혈 충돌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취약한 라카인주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급진화의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은 극단주의자들에게 쉽게 동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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