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은 박물관의 본질…화재 유품·인종차별 낙서도 수집해야"
샤론 아멘트 英 런던박물관장 "박물관은 기억을 후대에 전하는 공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1990년대 말에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박물관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어요. 하지만 박물관 관람객은 꾸준히 증가했죠. 박물관의 미래를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영국의 수도인 런던의 역사를 소개하는 런던박물관의 수장인 샤론 아멘트 관장은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물관은 역사의 기억을 후대에 전하는 공간이자 시간을 초월해 소통하는 장소"라며 이같이 말했다.
런던은 로마제국이 건설한 도시 '론디니움'으로 역사에 처음 나타났다. 중세 시대에는 바이킹족의 침입과 흑사병, 기근을 겪기도 했으나, 16세기 이후에는 세계를 지배한 영국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해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런던박물관은 런던이 지나온 2천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도시역사 박물관이다. 유골 2만 점을 포함해 의상, 회화, 사진, 생활용품 등 자료 60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연간 방문객은 125만 명에 달한다.
아멘트 관장은 무엇보다도 유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소장품은 박물관의 본질이자 정수"라며 "박물관의 개성과 차별화 전략은 결국 소장품에 기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6월 런던의 24층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이후 남은 물품은 물론 인종 차별적 내용이 담긴 낙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글도 런던박물관의 수집 대상이라고 밝혔다.
아멘트 관장은 런던박물관에 1만여 점이 있는 신발을 예로 들면서 "신발만 연구해도 당대의 패션뿐만 아니라 사람의 체형, 보행 습관, 질병 등에 대한 정보를 유추할 수 있다"며 "하나의 유물에는 방대한 정보가 담긴다"고 덧붙였다.
이어 "코끼리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봐서는 규모를 상상할 수 없다"며 "실물이 주는 마법 같은 놀라운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일한 종류의 유물이 있다고 해도 박물관이 취하는 태도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는 런던박물관이 빅토리아 앨버트박물관과 함께 영국에서 의상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소개한 뒤 "빅토리아 앨버트박물관이 누가 옷을 디자인했는지에 관심을 둔다면, 런던박물관은 누가 그 옷을 입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했다.
런던의 역사를 조명하는 런던박물관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이자 인류 전체의 문명을 망라해 보여주는 대영박물관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아멘트 관장은 "런던박물관은 주민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며 "런던 시민들로부터 새로운 통찰력을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학술적 성과를 내고 싶다"고 희망했다.
아멘트 관장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이 진행하는 '해외 문화예술계 주요인사 초청 사업'(K-Fellowship) 대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는 "런던과 서울은 비슷한 것 같다"며 "두 도시 모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혼잡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박물관을 찾으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과 박물관 사이의 교집합은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지역사회의 중심이 된다면 박물관은 계속 성장하지 않을까요."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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