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생활용품 불안 전방위 확산…소비자 "두렵다"
살충제 계란에 소시지까지…유해 생리대·중금속 범벅 휴대전화 케이스
과도한 케미포비아 증폭 우려도…"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살충제 계란과 닭에 이어 간염 바이러스 소시지 파문이 일고 있어 먹거리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유해 생리대 논란이 불거지고 일부 제품이기는 하지만 휴대전화에서 발암물질인 카드뮴 등 유해물질이 검출돼 생활용품도 소비자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생활용품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케미포비아'가 증폭되고 있어 화학제품을 무조건 쓰지 않겠다는 과도한 대응도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소비자 불안이 불필요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고 소비자들은 성분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구매하는 게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 끊이지 않는 먹거리·생활용품 유해논란
가습기 살균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보존제가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소비자들은 중증 폐 질환 등에 시달렸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추산하는 전체 피해자는 각 5만명과 200만명에 달한다.
2011년 처음 문제가 불거져 그해 질병관리본부가 전 제품을 수거했으나, 각종 형·민사소송과 피해보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지난해 치약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티아졸리논(MIT)은 씻어내는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보존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치약에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치약에 사용할 수 없는 데다가 가습기살균제의 성분 중 하나인 것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됐다.
CMIT·MIT가 든 치약 '메디안'을 판매하던 아모레퍼시픽은 논란이 일자 관련 제품 전체를 환불 및 회수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치약시장 점유율은 1∼4월 26.3%에서 올해 같은 기간 9.4%까지 떨어졌고,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올해 초에는 유한킴벌리의 하기스·그린핑거 물티슈 10종에서 메탄올이 허용치 이상 검출돼 엄마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유한킴벌리는 메탄올이 제조과정에서 비의도적으로 들어갔다고 해명했고, 식약처는 초과한 메탄올 수치가 국내외 기준과 비교했을 때 인체에 위해를 일으키는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한킴벌리는 논란이 된 제품을 환불하는 동시에 물티슈 생산을 전면 중단했고, 지난 6월에야 새로운 아기물티슈 브랜드 '닥터마밍'을 선보였다.
2월에는 프랑스의 한 잡지에서 피앤지 기저귀 '팸퍼스' 일부 품목에서 살충제 성분인 '다이옥신'이 검출됐다고 보도돼 국내에서도 기저귀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검사 결과 국내에 유통되는 피앤지 기저귀에서는 살충제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체의 민감한 부위에 직접 닿고 꾸준히 사용하는 생리대 또한 최근 부작용 사례가 지속해서 보고돼 여성들의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은 사용 후 생리통이 심해지거나 생리불순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오자 전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환불 조치에 들어갔다.
'릴리안' 외 다른 생리대 제품에서도 유해 물질이 나왔다는 연구 결과가 재조명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깨끗한나라 등 5개 생리대 제조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시행했으나, 논란이 되는 생리대 접착제에 포함된 휘발성유기화합물의 유해성 여부는 내년에나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중에 유통중인 일부 중국산 휴대전화 케이스에서는 카드뮴과 납 등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발암등급 1군 물질인 카드뮴이 기준치의 최대 9천배 이상 나온 제품도 있었다.
먹거리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에서는 '감염 소시지' 파문이 발생했다.
식약처는 최근 유럽에서 햄과 소시지로 인해 E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가 급증했다는 정보에 따라 수입·유통 중인 유럽산 비가열 햄·소시지의 유통과 판매를 잠정 중단시켰다.
◇ "뭘 먹고 뭘 써야할지 답답"…정확하고 신속한 정보 제공 필요
이번 '릴리안' 사태처럼 생활용품에 대한 문제 제기는 종종 직접 이를 사용한 소비자들에 의해 이뤄진다.
이후 비슷한 경험을 한 소비자들이 등장하고 제품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관련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여론이 확산하면 사회적인 이슈가 된다.
이중 실제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가 없는 경우 이후 밝혀지더라도 해당 제품을 만든 기업은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유해 물질은 공기 등에 자연적으로 존재하거나 다른 필수 원료 등에 소량 혼합된 경우가 있어 관련 제품에서 전혀 검출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실험 등을 통해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정도를 기준으로 설정해두고 관리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생활용품 등에 대한 기준 대부분이 외국보다 엄격한 편이지만 안전 이슈가 불거지면 소비자들이 바로 등을 돌린다"며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로 '케미포비아'가 증폭된 듯 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주부 이 모(45)씨는 "날마다 식품이나 생활용품에서 나와서는 안되는 유해물질이 나온다는 보도가 나고 있어서 두렵다"며 "뭘 먹고, 뭘 써야 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주 사용하는 제품일수록 더 꼼꼼히 따져보고 구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 교수는 "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사건을 통해 밝혀지니 소비자들이 신경 쓸 수밖에 없다"며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도 소비자들이 잘 믿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정부가 올바른 정보를 빨리 제공해야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amj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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