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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인 노동계층이 신분상승 사다리를 타기 어려운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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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인 노동계층이 신분상승 사다리를 타기 어려운 이유는

신간 '힐빌리의 노래'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영어 '힐빌리'(hillbilly)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의 가난한 백인 노동계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교육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시골 사람들을 뜻하는 '레드넥'(red necks)이나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같은 비하적 표현과 맥을 같이 한다.

신간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 펴냄)는 힐빌리 출신으로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해 실리콘트래시밸리로 진출한 32세 J.D. 밴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이다.

저자의 엄마는 약물중독이었고 아버지 후보는 수차례 바뀌었다. 그가 자란 곳은 빈곤, 이혼, 마약 중독 등 사회 문제의 집약지였다. 저자는 고교 중퇴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이후 오하이오 주립대를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해 지금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책은 밴스의 성장 과정을 소설처럼 그리지만 '나는 이런 역경을 딛고 성공했다'는 식의 성공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계층과 가정이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기력증에 빠진 백인 하층민들의 모습을 고발하는 내용에 가깝다.

저자가 자란 환경은 암울하기만 하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복지 혜택을 이용해 사치스럽고 게으르게 사는 백인 '복지 여왕'(welfare queen)들이 흔했다. 마약을 남용하다 체포되고 폭력적인 남자친구랑 사귀다가 담배를 살 수 있을 나이가 되기도 전에 임신한다. 가난한 살림에도 돈을 아끼기보다는 신용카드로 돈을 빌리고 고리대금을 얻어 소비한다. 가정에서는 서로 소리를 지르고 부모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를 때리기도 한다. 집마다 마약에 빠진 사람이 한 명씩은 있다. 부모는 자녀의 성적이 안 좋다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평화로운 가정을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며 대충 일하거나 일을 금방 그만둔다. 반면 남들에게는 근면을 강조한다.

경험하고 보고들은 사례로 힐빌리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저자는 묻는다. 왜 자신의 학교에서는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사람이 없었는지, 왜 자신은 하버드나 예일을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힐빌리의 노래' 저자인 J.D.밴스가 출연한 테드 강연 동영상. [https://youtu.be/iEy-xTbcr2A]



저자는 그 원인을 힐빌리의 '학습된 무기력'에서 찾는다. '인생에서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며 노력 부족을 무능력으로 착각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백인 노동 계층이 가장 변해야 할 점으로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라며 힐빌리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의 경우 해병대 입대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그는 집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배웠다면 해병대에서 '학습된 의지'를 배웠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마법처럼 문제를 해결할 공공정책이나 획기적인 정부 프로그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며 "자신 같은 환경에 놓인 아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요소가 무엇인지 먼저 이해한 뒤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게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때문이 아니었다. (중략) 성공적인 정책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먼저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충분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런 학생들의 진짜 문제는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냐느냐(혹은 일어나지 않느냐)와 관련이 있다"

잘못된 길로 빠질 상황에 부닥쳤을 때 바른길로 잡아줄 사람, 주변에 귀감으로 삼을 만한 좋은 사람, 교육을 받고 열심히 노력했을 때 어떤 결실을 보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람의 존재도 중요했다.

저자의 경우 할머니와 할아버지, 누나 등 가족의 도움이 있었다. 저자는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다.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성공한 다른 사람들도 내가 겪은 것과 유사한 형식의 개입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미국에서 지난해 6월 출간된 책은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백인 하층 노동자 계층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를 설명하는 책으로도 주목받았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승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여섯 권의 책 중 하나'로 이 책을 꼽기도 했다. 힐빌리가 처한 상황의 원인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 문제로 돌리는 내용은 미국에서도 논란이 됐다. 출간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마존의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다.

원제 'Hillbilly Elegy'. 김보람 옮김. 428쪽. 1만4천800원.

zitro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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