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인종주의 옹호 발언에 우군까지 외면…'고립무원' 트럼프(종합2보)
우호적 기업인들까지 등 돌리자 자문단 전격 해체 '악수'
공화당·군부서도 비판 쏟아지는데…정작 트럼프는 "해방감 느껴"
(뉴욕·서울=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김연숙 기자 =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 갈등에 기름을 부은 듯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정계는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전통적인 우군이었던 기업인들까지 등을 돌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했고, 미국 내 여론은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며 싸늘한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오후 트위터를 통해 "제조업자문위원단(AMC)과 전략정책포럼(SPF)의 기업경영인들에게 압력을 가하느니, 둘 다 활동을 중단하겠다. 모두 고마웠다"고 밝혔다.
백인우월주의자를 두둔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항의하는 기업 CEO들이 잇달아 경제 자문단을 사퇴하자 아예 자문단을 해체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 우월주의 시위의 유혈사태 책임을 두고 '대안우파' '대안좌파'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고 발언, 사실상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편을 들었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AMC에서 탈퇴한 위원만 7명에 달한다.
14일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회장을 시작으로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의 케빈 플랭크 CEO, 반도체 제조업체 인텔의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CEO, , 전미제조업연맹(AAM)의 스콧 폴 회장,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의 리처드 트럼카 회장이 연쇄적으로 제조업 자문단에서 탈퇴했다.
16일에는 식품회사 캠벨 수프의 데니스 모리슨 CEO, 대형 소비재 생산업체 3M의 잉거 툴린 CEO가 '탈퇴 대열'에 동참했다.
모리슨 CEO는 "인종주의와 살인은 명백히 비난받을 만한 일"이라며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다른 어떤 일도 도덕적으로 이와 같지 않다"고 비판했다.
SPF 위원이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우군' 역할을 해왔던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도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샬러츠빌 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인종주의, 불관용, 폭력은 언제나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하자,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와 월트디즈니의 밥 아이거 CEO 등이 SPF를 떠난 바 있다.
AP통신 등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자문단 해체를 '깜짝' 발표하기 전, 이미 자문단 자체적으로 해체 논의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AP에 따르면 SPF 의장이자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회사인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은 약 12명의 위원에게 16일 오전 긴급 전화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위원 중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로런스 핑크, IBM의 지니 로메티,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리치 레서 등 유명 CEO들이 포함돼 있다.
애초 긴급회의를 소집한 의도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 발언에 우려를 표명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45분간 진행된 실제 회의에서 압도적인 다수가 SPF 해체를 지지했다.
슈워츠먼 회장은 이 결정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로 알렸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의 결정에 동의했다.
SPF는 이후 낸 성명에서 "편협과 인종차별주의, 폭력은 미국의 핵심 가치에 대한 모욕으로 이 나라에서 절대 자리할 곳이 없다"고 밝혔다.
또다른 자문단인 AMC를 이끄는 다우케미칼의 앤드루 리버리스 CEO도 이날 백악관에 "현재와 같은 환경에서는 더는 생산적인 결정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두 곳의 공식 해체 발표가 있기 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차라리 해체하겠다"며 해체 결정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기업인들이 자발적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지만, 이들에게 버림받는 구도를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이 자문단을 해체키로 한 것처럼 연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공화당, 군 장성들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에서 "우리는 인종 증오 이데올로기에 대해 관용할 수 없다"고 밝혔으며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백인 우월주의는 역겹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공화당 안에서도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 "미국인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지사는 트위터에서 "아니, 같지 않다. 한쪽은 인종주의자에 편협한 나치이고, 다른 쪽은 인종주의와 편협성에 반대한 이들"이라며 "도덕적으로 다른 세계"라고 꼬집었다.
샬러츠빌 사태에 대해 "한 이야기(폭력사태)를 놓고 두 편이 있다"며 양비론을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조지 H.W 부시와 조지 W.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도 성명을 내고 "미국은 언제나 인종 편견과 반(反) 유대주의, 모든 형태의 증오를 거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크 밀리 미 육군참모총장은 트위터에서 "미 육군은 병영 내 인종주의, 극단주의, 증오를 수용하지 않는다"며 "1775년부터 우리가 수호해 온 가치에 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골드페인 공군참모총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 해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의 트윗을 지칭해 "우리는 항상 함께일 때 더 강하다고 한 동료 지휘부를 발언을 지지한다"고 썼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경기와 경제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하고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의 사퇴도 점쳐진다. 트럼프 정부의 전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일부 백악관 관리들이 그만둘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개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스티브 므누신 재무부 장관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으로 자신의 명성이 더럽혀질 것을 우려해 스스로 사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만든 위기 속에서 최고 경제 자문단으로부터도 버림받고 군 지도부와도 대립하며 공화당 내부에서마저 회피 대상이 되는 등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특히 트럼프와 오랜 친분을 쌓아온 재계가 등을 돌린 것이 가장 충격적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같은 사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에 참모들은 아연실색했지만 정작 대통령 본인은 측근 참모들에게 '말을 해놓고 나니 해방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밤 트위터에 오는 22일 피닉스에서 열리는 지지자 집회를 예고하며 참석을 독려하는 글도 올렸다.
그레그 스탠턴 피닉스 시장은 그러나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 여파가 아직 아물기도 전에 대통령이 정치 집회를 하는 데 "실망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피닉스 방문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oma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