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덮친 '살충제 계란' 공포…사상 초유 판매중단 사태
정부, 전수 조사 착수…추가 검출 가능성 배제 못해
추석 앞두고 '계란파동' 우려…제과·제빵·요식업계 생산 차질 예상
(세종=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국내산 친환경 농가 계란에서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전국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몰 등에서 일제히 계란 판매를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 유럽과 똑같은 '맹독성 피프로닐' 검출…전수조사 실시
1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전날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친환경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닭에 사용이 금지된 '피프로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남양주 농가 주인은 농식품부 조사에서 "옆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에 효과가 좋다는 얘길 듣고 사용했다. 피프로닐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피프로닐은 가축과 애완동물에 기생하는 벼룩과 진드기 등을 없애는 데 이용되는 물질이다. 하지만 닭에 대해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일자 피프로닐을 과다 섭취할 경우 간장·신장 등 장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피프로닐과 함께 경기도 광주의 또 다른 친환경 산란계 농장 계란에서는 닭 진드기 박멸용으로 사용되는 '비펜트린' 성분이 사용량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는 관계부처 및 민관 합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15일 0시부터 전국 3천 마리 이상 산란계 농가의 계란 출하를 잠정 중단했다.
이는 시중 유통량의 80∼90%에 해당한다.
또 규모에 상관없이 15∼17일 사흘간 전국 모든 산란계 농장 1천430여 곳에 대해 살충제 전수 조사를 시행한다.
전수 조사 결과 적합 농장은 검사 증명서 발급 후 계란 유통을 허용하고 부적합 농장은 2주 간격으로 추가 검사를 한다는 방침이다.
부적합으로 판명된 농장주에 대해서는 유독·유해 물질이 들어있거나 우려가 있는 축산물을 판매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한 축산물위생관리법 등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농식품부로부터 문제의 농장에서 납품한 중간유통상 정보를 넘겨받아 유통 경로를 추적 중이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빠르게 소진되는 계란 특성상 잔여량이 많진 않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단 파악되는 데까지 확인해 전량 회수·폐기할 방침이다.
◇ 계란 판매 '올스톱'…수급 비상
살충제 검출 소식에 대형마트 3사와 농협하나로마트, 슈퍼마켓, 편의점들은 계란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쿠팡과 위메프를 비롯한 주요 온라인쇼핑사이트들도 생란과 구운 계란, 과자류 등 계란 관련 제품의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국내 유통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형마트 3사와 농협하나로마트를 비롯해 온·오프라인에서 계란 판매가 모두 중단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불안감이 확산하자 조치에 나선 것이다.
유통업체들은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계란 판매를 중단했다가 순차적으로 결과가 나오면 판매 재개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해 말 터진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계란 한판 가격이 7천 원대 후반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이번엔 살충제 계란 파문까지 터지면서 추석 성수기를 한 달여 앞두고 계란 수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분간은 계란 수급 불안 현상이 가중되면서 가격도 더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계란 성수기인 추석 시즌이 되면 '계란 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식품·요식업계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식품업계에서는 계란을 직접 판매할 뿐만 아니라 각종 가공식품 등에 계란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당장 계란을 사용하는 제품 생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
제빵·제과업계도 각종 빵이나 과자를 만들 때 계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서 생산 중단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 예견된 사태…정부, 위생관리 구멍
당초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촉발됐을 당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에 대해 농식품부는 '국내 계란에서는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당국의 위생관리에 구멍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소비자연맹이 이달 9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열린 '유통 달걀 농약 관리 방안 토론회'에 참여한 박용호 서울대 교수는 2016년 산란계 사육농가 탐문조사에서 61%의 양계농가에서 닭 진드기 감염과 관련해 농약사용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어 농가의 농약사용에 대한 교육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밀집 사육하는 국내 양계장의 특성과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닭 진드기의 감염률이 매우 높아져 2016년 기준 국내산 닭의 진드기 감염률이 94%에 달한다고 국립축산과학원 자료를 인용해 밝혔다.
이보다 앞서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국감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확인 결과 계란을 대상으로 한 잔류 농약 검사는 최근 3년 동안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피프로닐이 계란을 포함한 축산물의 잔류 농약 검사 대상에 포함된 건 지난해이고 실제 이 물질에 대한 검사가 이뤄진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예견된 사태'였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농식품부는 뒤늦게 부랴부랴 농가를 대상으로 닭 살충제와 관련한 예방교육에 나서기로 했다.
대한양계협회는 살충제 성분 검출 발표가 나온 당일 오후 5시께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닭 진드기 및 산란계 질병 교육'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려 오는 22일부터 실시될 전국 4개 권역(경기, 충청, 경상, 전라)별 교육 일정을 안내했다.
당국은 조류인플루엔자(AI)로 농가들이 모이기가 어려웠고 예년에도 9월께 교육이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뒷북'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AI 발생으로 이동제한 등이 걸려 농가들이 모이기 어려웠으므로 교육이 빨리 이뤄지지 못했다"며 "이번 살충제 계란 검출로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교육 일정을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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