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21년 재임 'IOC 위원' 전격 사퇴…왜 지금?
"오랜 병환에 정상적 활동 불가능"…이재용 재판도 영향 미친 듯
스포츠 외교에 결정적 기여…재계·체육계 "국가적 손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직을 전격 사퇴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년인 80세까지는 아직 5년이나 남아 있는데다 최근 3년 이상 이어진 와병으로 위원으로서의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에도 IOC측에서 먼저 사퇴를 요청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래전략실 해체로 사실상 그룹 실체가 사라진 삼성은 12일 이 회장의 IOC 위원직 사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IOC가 전날 발표에서 "이 회장의 가족으로부터 'IOC 위원 재선임 대상으로 고려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한 점으로 미뤄봤을 때도 그룹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가족이 내린 결정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재계와 삼성 안팎에서는 오랜 병환으로 더이상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해 스스로 물러났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 건강 상태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진 상황에서 갑자기 사퇴한 것을 두고 약 2주 앞으로 다가온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나 최근 그룹 상황 등과 연결짓는 시각도 있다.
이런 갖가지 해석과 무관하게 재계와 체육계에서는 이 회장의 IOC 위원 사퇴에 대해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초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만나 "한국의 국제 스포츠 기여 정도를 감안해 한국 위원 숫자를 3명으로 늘리는 게 어떤가"라며 의견을 물었을 정도로 IOC 위원의 위상과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1996년 7월 위원에 선출된 이후 무려 20년 이상 글로벌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참석을 시작으로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 참석에 이르기까지 1년반 동안 무려 11차례에 걸쳐 170일간 출장 일정을 소화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글로벌기업 총수로서 각국 정상급 혹은 왕족 출신의 IOC 위원들과 꾸준히 관계를 구축한 것이 평창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때문에 탁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유승민 선수위원이 남아있긴 하지만 IOC 내에서도 거물급 인사로 활동했던 이 회장의 사퇴는 우리나라의 스포츠 외교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평창올림픽에 이어 2020년 도쿄 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 이른바 '동북아 올림픽 시대'에 스포츠를 활용한 3국 협력 강화의 기회도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한때 유력한 IOC 위원 후보로 거론됐던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도 현 상황을 감안했을 때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스포츠 외교를 담당할 후임이 마땅치 않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IOC 위원 사임은 오랜 투병으로 더이상 활동이 불가능한데다 장남의 수감 등을 감안해 가족이 내린 불가피한 결정으로 보인다"면서 "이유야 어떻든 이로 인해 스포츠계는 물론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큰 과제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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