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지원·살수 장비로 영해 침범 외국어선 쫓는 역할도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중국은 남중국해의 실효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어민을 훈련해 조직화한 '해상민병'(海上民兵)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민병은 군의 지시로 해상 시위에 참가하거나 물자운반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어선 위에 살수장치를 장착, 다른 나라 어선이나 배가 자국의 영유권 주장 해역 내에 들어오면 쫓아내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7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이 신문 기자가 지난달 17일 하이난(海南) 성 싼야(三亞)시에서 서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야저우(崖州)어항에서 대형 어선의 사진을 찍자 배에서 선원이 쫓아 나와 "찍지 말라"며 "지우라"고 요구했다.
군함이라면 몰라도 어선인데 문제가 되느냐고 묻자 다짜고짜 카메라를 빼앗아 사진을 삭제해 버렸다. 할 수 없이 건너편으로 돌아가 다시 사진을 찍는데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던 왕(王)이라는 초로의 남성이 "배 위에 큰 방수(放水) 총이 있는 저 배가 하는 일은 절반은 어업이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나라 배를 쫓아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싼야시 정부가 30억 위안(약 5천24억 원)을 들여 작년 8월에 개항한 야저우어항은 약 800척의 어선이 정박할 수 있는 하이난 섬 최대의 어항이다. 현재도 확장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이 어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실효지배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2013년 4월 8일 야저우에서 230㎞ 정도 떨어진 충하이(瓊海)시의 어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현지 어민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당과 정부는 여러분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고 위로했다. 시 주석의 격려를 받은 사람들은 "해상민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어민이지만 군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왕씨에 따르면 대형 어선에 타는 사람들은 이들 민병이다. 중국의 무력에 의한 해양진출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민병 어선 이외에도 하이난 성 소속 어선에는 혜택이 많다. 일시 기항한 광둥(廣東) 성의 양예충(楊業忠. 58)은 "이곳 배들은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南沙>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 가까이 가기만 해도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는데 우리는 같은 장소에 가도 한 푼도 안 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싼야시에서는 파라셀 군도(중국명 시사군도<西沙群島>·베트남명 호앙사군도)로 가는 크루즈선도 뜬다. 정부 주도로 현지 투어가 2013년 4월에 시작돼 작년까지 연 2만3천 명이 참가했다. 작년 말에는 크루즈선이 한 척 증가해 수송능력이 4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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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참가자격은 중국인으로 국한된다. "애국주의 활동"이라는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국기를 게양하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에서 양친과 함께 참가했다는 20대의 쑨산(孫珊)은 "모국의 최남단에서 국기를 세워 하나가 되는 건 훌륭한 일"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국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사군도 우디섬(융싱다오<永興島>)에서는 7월부터 영화관이 상영을 시작했다. 첫날 군민 200여 명이 영화를 감상했다. 화질이 섬세한 4K 영사기와 3D 스크린 등 최첨단 설비가 갖춰져 있다고 한다.
중국이 실효지배 강화를 겨냥한 대책을 착착 진행하고 있지만, 현지 어민들은 남중국해 현장에서 필리핀 배와 대치하는 장면은 거의 없어졌다고 입을 모아 전했다. 하이난 성 충하이 시에 사는 양자태(梁子太. 48)는 "우리(중국) 감시선이 따라 오는 것도 아니고 아주 조용하다"고 말했다.
남중국해 분쟁이 소강상태라는 이야기는 필리핀 쪽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북부 어촌에 사는 베냐민(41)은 7월 중순 고기잡이를 나갔을 때 스카보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 필리핀명 바조데마신록) 근처에 4척, 암초 안쪽에 2척의 중국 해경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 중국인이 보트를 타고 필리핀 어선에 접근해 물물교환을 요구했다고 한다. 마른국수나 담배를 내밀며 비싼 생선과 바꾸자고 하는 게 불만이지만 "이전에 비하면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최근 반년 정도는 바다가 거칠어지면 중국 배의 제지를 받지 않고 암초 안쪽으로 피난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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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네덜란드 헤이그 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인 "9단선"이 "유엔해양법조약에 위반된다"며 중국의 주장을 거의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 게 상황변화의 전기가 됐다.
중국 정부는 판결 직전 취임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필리핀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했다. 중국의 통 큰 경제지원으로 양국관계가 급속히 개선되자 필리핀 외교부는 지난 6월 "근린국과의 우호 관계를 구축해 어민들이 스카보러 암초에서 조업할 수 있게 됐다. 거액의 경제지원도 얻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두테르테는 아버지 쪽 조부가 여(呂)씨 성의 중국계라고 밝히면서 "나는 중국인"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맥주와 부동산사업을 하는 중국계 대기업 산미구엘 사장에게서 선거자금을 받은 사실도 감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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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는 중국이 군사 거점화 계획을 포기할 기미는 없다면서 "중국은 스카보러 암초 일대의 군사 거점화를 3년 이내에 완료할 것"이라는 아키노 전 정부의 안전보장담당 관계자의 경고를 전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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