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86층 초고층빌딩 화재 사상자 0명…런던 참사와 '딴판'
마감재 교체·차단벽·신속 대피 등으로 인명피해 없어
영국 그렌펠 타워 화재 땐 총체적 부실로 80명 사망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86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토치 타워'에서 4일(현지시간) 새벽 대형화재가 발생했으나 지금까지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80명의 사망자를 낸 영국 런던의 그렌펠 타워 참사와 비교되고 있다.
두바이 소방 당국은 이날 토치 타워에서 발화한 불이 2시간 반 만에 진압됐으며 지금까지 사상자는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날 화재의 양상은 지난 6월 영국 런던 공공임대아파트인 그렌펠 타워 화재 참사와 비슷했으나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토치 타워와 그렌펠 타워 화재는 불이 중간층에서 처음 시작하고 나서 그 주변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과정은 외관상 비슷해 보인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과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새벽 1시께 토치 타워 67층 부위에서 시작한 불이 건물 한쪽 외벽을 타고 아래위로 급속히 번졌다. 이 건물 옥상까지 불이 붙었다.
목격자들은 이번 화재로 아파트의 30∼40층가량이 불길에 휩싸였고, 건물 파편들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인근에 주차된 차량 2대도 불에 탔다고 전했다.
그렌펠 타워 화재 때도 중간층에서 불이 시작해 불길이 전체적으로 확산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토치 타워가 그렌펠 타워와 유사한 외장재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건물 외관을 윤색하려고 사용되는 가연성 외장재는 화재 때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번지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돼 세계 각국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그러나 두 고층 빌딩의 불길이 번지는 방향과 주민의 대피 과정은 확연히 달랐다.
토치 타워의 불길은 한쪽 벽면의 위아래로만 빠르게 번졌을 뿐 그렌펠 타워 때처럼 위아래는 물론 옆으로까지 확산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그렌펠 타워의 경우 불길뿐만 아니라 검은 연기가 건물 전체를 순식간에 휩싸 인명피해가 컸다.
반면, 토치 타워 거주민들은 불길이 닿지 않은 한쪽의 비상계단을 이용해 대피할 수 있었다.
이 건물에 사는 한 주민은 "잠을 자다가 화재 경보가 울리고 나서 계단을 통해 대피했다. 50층에서 대피하는 데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비상계단을 이용하지 못할 정도의 불이 붙거나 연기가 자욱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UAE 국내외 매체는 두 화재를 비교 분석하면서 외벽 마감재(클래딩)와 방화벽의 존재 여부, 정부의 안전 규정 강화에 주목하고 있다.
2011년 완공된 토치 타워는 2015년 2월 발생한 화재로 외벽 마감재를 전면 리노베이트하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여름부터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UAE는 2013년부터 15m 이상의 모든 빌딩을 대상으로 내화성의 외벽 마감재를 쓰도록 건물 안전 규정도 개정했는데 두바이의 대부분 빌딩은 열가소성 물질의 패널을 마감재로 쓰고 있다.
두바이의 최신식 빌딩들이 강철 또는 콘크리트로 불길 확산을 막는 방화벽 구조로 지어진 점도 특징이다. 이는 각 층과 가구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는 화재 차단막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두바이 정부는 올해 1월 고층 빌딩의 화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더욱 강력한 규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신속한 대피 과정도 인명피해를 내지 않은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두바이 당국은 화재 발발 이후 "신속하게 거주민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대피시켰다"고 평가했다. 거주민들은 대부분 화재 경보를 듣고 잠에서 깨 계단을 통해 대피했다고 말하고 있다.
토치 타워에서는 2015년 2월에도 화재가 발생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당시 현지 일간 걸프뉴스는 화재 직후 경보음이 울렸고 경비원과 환경미화원들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고 알린 덕분에 인명피해가 없었다고 전했다.
반면, 영국의 공공 임대아파트였던 그렌펠 타워 화재 당시 거주민 다수는 화재 경보나 대피 방송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1974년 완공된 이 타워는 값싼 외장재를 쓰고 스프링클러 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은 노후 빌딩이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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