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연 이재용…'삼성합병·경영권승계 청탁' 혐의 모두 부인(종합)
특검 논리 적극 반박…뇌물공여 핵심고리 끊어내기·선 긋기 전략
이 부회장 '몰랐다·아니다·없었다' 진술 일관…임원들 "내 책임"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황재하 이보배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월 중순 구속된 이후 처음으로 2일 자신의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본인 재판의 피고인 신문을 통해서다. 이날 재판은 50번째 속행공판이다. 오후 4시 35분께 시작된 신문은 잠시 휴정했다가 7시부터 속개됐다.
이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주장한 주요 혐의의 핵심 사실관계를 부인했다. '아니다, 모른다, 그런 적 없었다'는 취지로 요약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는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으며, 합병을 추진한 그룹 미래전략실 업무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련 보고도 받지 않았으며 합병이나 미전실 업무는 최지성 실장이 알아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삼성합병 성사'라는 현안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대가로 의심받는 '정유라 승마 지원'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유라가 누구인지, 정윤회·최순실의 딸인지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 "삼성 합병은 양사가 알아서 한 일" =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두 회사와 미전실이 주도해 이뤄진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서 하는 사업들은 제가 지식도 없고 업계 경향도 모른다. 함부로 개입할 것도 아니다"라며 "양사 합병은 사장들하고 미전실에서 알아서 다 한 일"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엘리엇 사태가 터진 후 경영진이 그 일에 신경 쓰느라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아 최 전 실장에게 "다시 한 번 검토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건의했다고도 말했다. 합병이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하나로 추진된 것 아니냐는 특검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 "경영권 승계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 없다" = 삼성 관계자들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은 이 부회장 하나뿐이라 경영 승계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문제였다는 것이다.
최 전 실장은 이날 "이 부회장은 이미 안팎에서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이기 때문에 부회장이 사장단 회의 등에서 추대받으면 승계가 끝난다고 생각했다. 다른 법적 프로세스나 요건이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영권 승계 문제가 왜 대통령과 관계되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가나 청탁 같은 건 생각조차 못 했다"고 답답해했다. 대통령에게 굳이 '잘 봐달라'고 부탁할 이유가 없었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 자신도 사업 구조 개편을 통한 승계는 "생각도 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사업을 성공시킬 능력이 경영권이지, 지분을 몇 % 갖고 있다고 해서 경영권이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 '승계 시나리오' 꾸민 미전실과 무관 = 이 부회장은 그룹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특검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특검팀이 '미전실에서 어떤 업무나 역할을 했나'라고 묻자 "미전실에 한 번도 소속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자신은 삼성전자 소속으로, 업무의 95% 이상을 삼성전자와 관련 계열사 업무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룹 총수'로서 형사 책임과 거리를 두는 발언이다.
다만 이건희 회장이 2014년 쓰러진 후에는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 대표자로 외부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조금 늘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판 증인으로 나와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으로부터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미전실장, 장충기 전 차장 등 4인이 모여 주요 현안을 논의한다고 들었다"고 한 증언도 반박했다. "업무 영역이 달라 4명이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합병과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를 짜고 실행에 옮긴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전실과 선 긋기를 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 "朴독대 때 현안 청탁·정유라 지원 얘기 없었다" =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독대 과정에서 그룹 현안 해결을 청탁하고 정유라의 승마 지원을 약속했다'는 핵심 공소사실을 정면 반박했다.
우선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고 한 것은 삼성이 기업 규모가 크고 과거 승마협회를 맡았던 적이 있어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최 전 실장도 "비인기 종목인 승마가 잘 지원되지 않으니 능력 있는 삼성이 맡으라고 던져준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정유라가 정윤회씨의 딸이라거나 승마선수라는 사실, 최순실씨가 비선 실세라는 얘기 등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2015년 7월 25일 2차 독대에서도 '정유라 지원'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특검팀이 '박 전 대통령과 삼성그룹 현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나'라고 묻자 "내가 말씀드린 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독대 전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서 그룹 현안이나 애로사항을 준비해오라는 얘기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전 사장 등이 독일로 출국해 최씨의 측근인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를 만나 정유라 지원 방안을 논의한 과정, 코레스포츠와 용역 계약 체결 등도 당시엔 보고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최 전 실장도 이날 "이 부회장에게 대략적인 개요는 얘기한 것 같은데 정유라 얘기는 끝내 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혹여 문제가 생길 경우 자신이 다 책임질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 "재단 출연·센터 후원, 문제 된 후 알아" = 이 부회장은 특검팀이 뇌물 수수·공여 범행 과정의 한 축을 이룬다고 본 미르·K재단 출연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도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나서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2015년 7월 25일 2차 독대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서 '문화와 스포츠 융성에 힘써달라'는 취지의 얘기는 들었지만 "재단 출연 얘긴 기억이 안 난다"는 주장이다. 작년 2월 독대 때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출연에 대한 감사 인사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룹 계열사들이 두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사실도 지난해 언론보도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씨와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한 영재센터의 이름도 언론보도 이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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