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에 맥주캔 던진 기자, 해직돼 피자 배달하며 전전
캐나다 매체, '맥주캔 투척자' 송두리째 달라진 인생 자세히 다뤄
"아무도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정말 미안하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김현수(29)가 수비를 보다가 하마터면 맥주캔에 맞을 뻔한 기억은 한국 야구팬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5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토론토에 있는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일어났다.
좌익수 김현수는 7회 대타 멜빈 업튼 주니어의 뜬공을 잡으려다가 관중석에서 날아든 맥주캔에 맞을 뻔했다.
토론토 경찰은 맥주캔의 투척 방향을 역추적해 찾은 용의자의 얼굴 사진을 공개했고, 얼마 뒤 캐나다 '포스트 미디어' 현직 기자인 켄 페이건(42)을 용의자로 검거했다.
캐나다 방송 CBC는 2일(한국시간) 페이건을 인터뷰한 장문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페이건은 8세 때부터 야구에 미쳐 있었다.
운동 신경도 괜찮았지만, 그보다는 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재능이 있어 기자가 됐다.
'그날' 이후 평생 응원해온 토론토 경기를 직접 관람한 적이 없다. 재판 결과 1년 동안 메이저리그 구장 출입금지 처분과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바보였다. 지금도 뉘우친다"며 "(야구장에 갈 수 있다고 해도) 그런 기분을 느끼며 9이닝 동안 앉아 있을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페이건의 맥주캔 투척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들썩였다.
특히 미국인들은 "예의 바른 캐나다인들이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SNS에는 온갖 조롱이 잇따랐다.
페이건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포스트 미디어'의 기자였던 페이건은 직업을 잃고 말았다.
그는 사건 8일 뒤인 10월 13일, 직장인 '포스트 미디어'를 떠났다. 이유는 페이건과 '포스트 미디어'의 비공개 협약에 따라 비밀에 부쳐졌다.
사실상 해고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페이건은 그날의 잘못으로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인생까지 완전히 부정당하는 현실이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페이건은 "그날 이전의 41년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스스로 자주 되새긴다. 왜냐면, 그것이 진짜 내 모습이기 때문"이라면서 "트위터에서 조롱당하는 술 취한 '맥주캔 투척자'는 원래 내가 아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날 경기 전 아무런 불길한 예감도 없었다고 한다. 기분 좋게 맥주 몇 잔을 마셨을 뿐이다. 취기가 오르긴 했다.
경기는 팽팽하게 흘러갔다. 페이건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어쩌면 담장을 넘길 수 있을 것 같던 업튼의 타구는 워닝트랙의 김현수를 향했다. 바로 그때, 페이건은 무의식중에 쥐고 있던 맥주캔을 던지고 말았다.
페이건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취해 있었는데, 공이 외야 관중석에 있는 내 방향으로 오는 게 아닌가"라며 "흥분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충동적으로 던져버렸다"고 그 순간을 돌아봤다.
놀라서 멍해 있는 김현수 대신 중견수 애덤 존스와 벅 쇼월터 감독이 강하게 항의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역시 아연실색한 페이건은 곧바로 경기장을 떠났다.
이후 언론 보도와 트위터·페이스북 게시물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페이건은 변호사와 상담했다.
얼마 안 가 페이건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언론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았고, 재판에 넘겨졌다.
페이건은 "천직으로 알았던 기자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 새로운 밥벌이를 찾아야 했다. 그는 피자 배달을 하면서 마당을 가꾸는 정원사 일도 했다. 올해 3월부터는 산업용 자재 분리수거·재활용 관련 업무도 하게 됐다.
페이건은 요즘도 김현수한테 맥주캔을 던진 그 순간을 자주 떠올린다.
그는 "아무도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며 김현수와 볼티모어 구단, 더 나아가 야구팬들을 향해 "정말 미안하다. 난 다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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