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선거 강행에 美 추가 제재 카드 '만지작'
석유산업 대상 제재 관측…마두로 "미국 말 신경 안써" 맞불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개헌 권한을 지닌 베네수엘라 제헌의회 선거 이후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한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추가 제재를 준비하는 가운데 베네수엘라 정부가 한치도 물러날 태세를 보이지 않으면서다.
3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미국 관리들은 "새 제재는 이르면 오늘 중 부과될 것"이라며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 기업을 포함한 석유산업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재에 미국으로의 원유 수송 금지는 포함되지 않지만, 베네수엘라가 수출용 중질 원유에 섞는 미국 경질 원유 판매를 막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26일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 법치를 손상하려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지속적인 시도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위급 인사 13명에 대해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 기업과 거래를 금지하는 등 제재안을 내놨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제헌의회 선거를 강행할 경우 추가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곁들였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아랑곳없이 30일 예정대로 제헌의회 선거를 치렀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제헌의회 선거에 808만9천320 명이 참가해 41.53%라는 예상 밖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3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이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우파 야권이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자체적으로 실시한 찬반 투표에서 700만여 명이 참여해 압도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에 마두로 대통령은 역사적인 승리를 선언하며 한껏 고무됐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의 가짜 선거는 독재를 향한 또 다른 단계"라며 "우리는 불법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비판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전날 투표 마감 후 행한 대중연설에서 "제국주의자 트럼프의 대변인이 우리의 제헌의회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면서 "왜 우리가 트럼프의 말에 신경을 써야 하나? 우리는 주권을 지닌 국민의 말에만 신경을 쓴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54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제헌의회는 기존 헌법의 개정과 국가기관 해산 등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이 때문에 우파 야권이 장악한 기존 의회를 무력화하고 마두로 정권의 권력을 강화하는 제도적 수단이 아니냐는 야권과 미국 등 일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전날 폭탄테러 등으로 최소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치러진 제헌의회 선거에 대해 쿠바와 니카라과, 볼리비아 등 중미 좌파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제사회는 우려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외에도 유럽연합(EU), 아르헨티나, 캐나다, 콜롬비아, 멕시코,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스페인, 영국 등이 일제히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은 "우리는 이번 선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현 정권이 권력을 유지할 것이 명확하다. 민심은 체제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지금 선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베네수엘라 여야에 무의미한 권력투쟁을 끝내야 한다"고 촉구하고 "외부 세력이 베네수엘라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키는 개입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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