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당연히 하고 싶어…잊혔을 때 '짠' 하고 돌아올 수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처음에만 해도 생소한 아이템이었죠. 내부에서도 다들 '대체 너희 무슨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냐' 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어요. 그런데 이렇게 사랑해주셔서 감사하죠."
예능에 새로운 트렌드를 쓰고 퇴장한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을 연출한 양정우(33) PD를 최근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에서 만났다.
양 PD는 "말이 '잡학'이지 사실 사람 사는 얘기와 다 결부돼 있다. 그래서 많이들 좋아해 주신 것 같다"며 "방송이 나갈 때마다 출연자들이 언급한 책과 역사 속 인물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알쓸신잡'을 이끈 유시민 작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정재승 물리학 박사, 김영하 작가와 MC 유희열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삼천포의 향연'이다. 음식 얘기에서 시작해 냉동인간의 윤리적 문제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등 사회적 문제까지 망라하니 정신이 없을 법도 한데 빠져드는 게 신기하다.
양 PD는 이에 대해 "그게 이야기의 힘"이었다며 "결국 어떤 분야든 재밌는 이야기는 시청자가 귀 기울여 들을 의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알쓸신잡'은 방송 전부터 유시민의 출연 때문에 관심을 끌었다. JTBC '썰전'에서도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치 토크쇼였고, 예능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작가님을 찾아가서 '각 분야의 사람이 여행하며 삼천포로 빠지는 얘기'라고 소개하자 매우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나는 하기 어렵다'고 하셨죠. 방송인이 아니고, 써야 할 책도 많은데 본업이 흐려지게 될까 봐 걱정하셨거든요. 그 뒤로 매주 한 번씩 찾아뵀죠. 정말 '삼고초려' 했어요. 역시 마음을 여는 데는 이야기가 최고더군요."
그는 유시민 작가에 대해 "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제일 놀란 부분은 방송과 관련해 제작진에게 전적으로 맡겨준 부분이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방송 초반 음식 분야에 있어서까지 유시민이 황교익보다 더 많은 의견을 피력하는 등 유시민이 집중적으로 조명된 부분에 대해서는 "유시민 작가는 틀려도 되지만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전문가로서 신중해야 했기 때문에 초반에 겪은 비애였던 것 같다"고 웃으며 "중반부터 황교익 선생님이 감을 제대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김영하 작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트렌디하고 우아한 감각이 있다"며 "사람도 많이 만나고, 혼자 사유도 많이 해왔기 때문에 깊이가 있다. 특히 어떤 주제로 얘기해도 공감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함께 전혀 다른 예능을 해도 잘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승 박사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왕성해 늘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고, 유희열에 대해서는 "이야기 듣는 재미에 푹 빠졌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내는 다섯 남자는 방송에 담기는 수다로도 모자라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까지 개설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시민과 김영하가 여전히 2G폰을 쓰고 있어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조용하다고 양 PD는 귀띔했다. 대신 유시민은 황교익과 둘이서 낚시 다니는 재미에 한참 빠져있다고 한다.
'알쓸신잡' 팀은 방송하는 동안 10개 지역 125곳을 방문했으며, 57가지 음식을 먹었고, 282개의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양 PD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은 강릉이라고 밝혔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경주에서의 밤을 꼽았다.
"강릉은 참 좋은 곳이 많아서 혼자라도 놀러 가고 싶어요. 또 경주에서 보낸 밤은 잊을 수 없죠. 젠트리피케이션과 인간의 미래에 관해 얘기했을 때 출연진은 물론 스태프까지도 '이 이야기는 끝까지 가봐야 한다'며 대기했어요. 정말 묘한 밤이었습니다."
2011년 tvN에 입사한 양 PD는 초반에 주로 다큐멘터리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연출했지만 나영석 PD를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예능에 입문했다.
그는 "사실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신서유기'인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극명하게 다른 것 같다"며 "앞으로 공부가 되면 음악 예능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일단은 휴가를 다녀오겠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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