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美공화, 트럼프 국정 줄줄이 제동…트럼프 사면초가
오바마케어 폐지·세션스 해임·트랜스젠더 복무 금지 '좌초'
매케인·그레이엄 등 중진들 앞장서 트럼프 손발 묶어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단적이고 미숙한 국정운영에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오바마케어(전국민건강보험법·ACA) 폐지는 실패했고,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및 로버트 뮬러 특검 해임 시도는 사실상 무산됐으며,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추진은 급제동이 걸렸다.
공화당 내 소신 있는 '강골' 의원들이 전면에 나서 트럼프 대통령의 손발을 꽁꽁 묶었다.
아킬레스건인 '러시아 스캔들' 위기를 모면하고자 던진 승부수들이 일제히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고, 국정 동력은 뚝 떨어졌다. 불과 일주일 사이의 일이다.
◇오바마케어 폐지 실패, 힘 빠진 트럼프
공화당 지도부는 28일 새벽 상원 전체회의에 일명 '스키니 리필'(skinny repeal·일부 폐기) 법안을 상정했다.
사실상 오바마케어 폐지가 여의치 않은 데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오바마케어 내용 대부분을 그대로 두고 개인과 기업의 의무가입 등 일부 조항만 손 덴 '무늬만' 폐지법안이었다.
그러나 뇌종양 투병 와중에도 표결에 참여한 공화당 중진 존 매케인 의원은 '졸속 입법'에 반대했고, 그의 한 표는 트럼프 대통령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찬성 49표대 반대 51로 부결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내 책상에 법안이 오기 전까지 아무도 워싱턴을 떠나선 안 된다", "상원의원으로 남고 싶지 않으냐"면서 상원의원들을 협박했지만, 베트남전 영웅의 소신을 꺾지 못했다.
이로써 오바마케어 폐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미 언론의 진단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법안이라도 좋으니 내 책상 위에 가지고 오라는 식이었다"며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을 만들겠다는 거짓말을 이젠 그만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세션스·뮬러 해임 시도? "대통령 임기 끝날 것"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이 갈수록 숨통을 죄자, 세션스 법무장관과 뮬러 특검의 해임을 모색했다.
그는 지난 24일 트위터에서 "사면초가에 빠진 우리의 법무장관은 왜 사기꾼 힐러리 클린턴의 범죄와 러시아 스캔들을 조사하지 않는가"라고 질타했다.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실세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돼 상원 청문회에 선 날이었다. 미국민의 관심을 돌리고 국면을 전환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다음날에도 "세션스 장관은 힐러리 및 정보 유출자들에 대해 매우 나약한 입장을 취해 왔다"고 공개로 비판하며 해임설에 계속 불을 지폈다.
그러나 그의 트윗은 정보위와 법사위에서 러시아 스캔들을 파헤치고 있는 세션스 장관의 '동료' 상원 의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세션스 장관은 20년 넘게 상원에서 활약한 베테랑이다.
찰스 그래슬리 상원 법사위원장은 "새 장관 후보가 지명되더라도 인준 청문회를 열지 않겠다"고 반발했고, 벤 세스 상원의원은 "대통령직은 황소가 아니며, 이 나라는 도자기 가게가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의원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뮬러 특검 해임설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시작이 될 것"이라며 대통령의 특검 해임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리처드 버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런 법안이 필요 없길 바란다"면서 그레이엄 의원의 법안 발의에 동조하고 나섰다.
◇트위터로 '트랜스젠더 복무 금지' 발표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한 국정 수행에 친(親)트럼프 의원들도 하나둘 등을 돌렸다. 지난 26일 트위터로 발표한 '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계획이 대표적이다.
조니 에른스트, 오린 해치 상원의원은 군 수뇌부조차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불쑥 '모닝 트윗'으로 정책이 발표되자, 성명을 내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나갔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해온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도 "국방부의 검토 의견부터 들어보겠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상·하원 '친러시아' 트럼프 손발 묶어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 와중에도 시리아 사태 등을 내세워 미·러 관계 해빙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상원은 27일 러시아·북한·이라크를 묶은 3국 제재법안을 찬성 98표, 반대 2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도 419대 3으로 통과한 이 법안은 러시아 석유 기업의 미국과 유럽 내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정조준하는 새로운 대러 제재를 추가했다.
특히 이 법안은 대통령이 대러 제재를 손보려면 반드시 의회 승인을 받도록 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족쇄를 채운 셈이 됐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차단했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였던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은 "어떠한 대통령도 의회가 그의 손을 묶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토론을 진행될 것이고, 법안은 재의결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상원 재의결에 필요한 찬성표는 27일 법률 의결 때 나온 숫자(98표)보다 훨씬 적은 67표에 불과하다.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일제히 들고 있어선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분별한 트위터 정치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WP는 지적했다.
토머스 루니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랜스젠더 복무 금지' 트윗을 불쑥 올렸을 때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면 그와 다른 내용의 트윗이 올라온다"면서 "우리가 이번 주에 여기서 과연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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