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할란 엘리슨 걸작선·좀비 연대기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철규(37)의 첫 시집.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눈물의 중력')고 시인은 말한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며 기도한다. 그 대상은 동물원을 탈출했다가 마취총을 맞은 기린('마비')부터 세월호 아이들, 고 백남기 농민까지 아우른다. 시인에게 지구는 눈물로 가득 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슬픔의 자전' 부분)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 우리는 떠올라야 한다/ 우리는 기어올라야 한다/ 누구도 우리를 끌어올리지 않는다//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캄캄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검은 방' 부분)
문학동네. 172쪽. 8천원.
▲ 할란 엘리슨 걸작선 1∼3 = 미국 SF·판타지 작가 할란 엘리슨(83)의 작품집. '제프티는 다섯 살',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등 3권에 단편소설 23편을 나눠 담았다. 모두 휴고상·에드거상·네뷸러상 등 유수의 문학상 수상작이다.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작가는 10대 때 가출을 밥 먹듯이 하며 참치잡이 어부, 일용직 농장 노동자, 석판 인쇄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청소년범죄에 관한 작품을 쓰기 위해 갱단에 들어가기도 했다.
작가는 오하이오 주립대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창작능력을 무시하는 교수를 두들겨 패고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40여 년간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그 교수에게 복사본을 보냈다는 괴짜다.
SF칼럼니스트 심완선은 "영화 '터미네이터'를 비롯해 자기 아이디어를 베꼈다고 보이는 영화 제작사들을 상대로 지독한 저작권 소송을 벌였다는 일화도 유명하다"며 "하지만 할란 엘리슨의 악명이 드높은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탁월한 작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작. 신해경·이수현 옮김. 각권 324∼340쪽. 각 1만4천800원.
▲ 좀비 연대기 = 좀비가 등장하는 단편소설 12편 모음집.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쓰인 작품들이다. 오늘날 대중문화의 '언데드' 장르를 주름잡는 좀비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좀비는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와 부두교에서 기원했다. 주술사와 부두교 사제가 인간을 죽음과 유사한 혼수상태로 만들어 매장했다가 생명의 일부를 소생시키는 해독제를 주입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탐험가이자 신비학자인 윌리엄 뷸러 시브룩(1884∼1945)의 1929년작 '마법의 섬'은 좀비의 존재를 서구에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으로 꼽힌다.
"나는 메스꺼운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눈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 진짜였다. 남자의 두 눈은 정말이지 시체의 눈 같았다. 눈이 먼 것이 아니라, 그저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초점 없이 열려 있었다. 전체적인 얼굴도 섬뜩하긴 매한가지였다. 텅 비어 있는 것처럼 휑했다. 단순히 무표정한 것이 아니라 표정을 아예 짓지 못하는 것 같았다."
책세상. 정진영 옮김. 380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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