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신용목 새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신용목(43)의 네 번째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창비)에는 죽음과 시체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시체라는 걸 처음 목격하게 만든 아버지의 죽음이 여러 차례 그려진다. 여기에 더해 절망적인 세계의 일상은 죽음과 겹친다. "네 운명이 앞질러 되가져간/ 슬픔 덕분에/ 실직당해 몸 밖으로 쫓겨난 꿈 때문에/ 내가 일상이라는 죽음을 죽기까지 살게 될 테니" ('나는 알고 있거든' 부분)
시체는 "육체 속에 숨어" 있고 육체에는 "피 대신 눈물이" 돈다. 아버지 시신 앞에서 형들은 "왜 시체는 육체가 못 되냐"며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은 사실 "빨간색을 뺀 피"였다. "그 모든 게 시체였다니!" ('게으른 시체' 부분)
시체가 불쑥 나타나는 시세계는 슬픔과 비애로 가득 차 있다. 슬픔은 국경이 지워진 채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고, 망명지는 사라졌다. "현장에서 나온 폐기물을 포대에 담아내듯이 슬픔이 나를 내 인생에 담아가고 있는지도"('귀가사') 모른다.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 이렇게 깊다/ 내가 저지른 바다는// (…)// 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 ('저지르는 비' 부분)
슬픔을 안기고 죽음을 불러오는 건 시인 역시 발 딛고 서 있는 어두운 세계다. 시인은 같은 세계를 살아가면서 "기쁘다고 말하며 울고 슬프다며 말하며 웃는 사람들"('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슬픔과 죽음을 반복해 제시하는 이유다.
시인은 사회적 현실의 문제를 서정으로 풀어낸다. 구체적 사건을 끌어들이는 대신 그늘진 곳에 서린 슬픔을 응시하며 말을 건넨다. "나는 네 몸이 아프다"('절반만 말해진 거짓')라며 주저없이 고통을 나눠 안는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우리라서,// 아침이면 차창을 스쳐가는 나무들이 단 한번 죽음을 주인으로 모시고/ 밤처럼 꼭 감은 눈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방울씩 받아주는 때가 온다." ('우리라서' 부분)
"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공동체' 부분)
시집을 가득 채운 슬픔의 세계에 편입된 독자는 곧 '우리'가 제시하는 가능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표제는 '모래시계'의 한 구절에서 왔다. 시인은 이렇게도 썼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184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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