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육군 22사단서 또 사병 투신,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나
(서울=연합뉴스)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 행위에 시달렸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육군 22사단 소속 일병의 죽음을 둘러싸고 파문이 커지고 있다. 홍익대 총학생회와 국어국문학과 학생회 및 교수진, 문과대 학생회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육군 제22사단에서 선임들의 구타, 폭언, 추행 등으로 15학번 고필주 학우가 죽음에 이르렀다"며 "고 군처럼 선한 학생이 적응할 수 없는 곳이 군대라면 이는 절대 한 개인의 부적응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대학 재학생과 교수들이 고 일병의 실명까지 공개하며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고 정부 차원의 재발방지 조치를 촉구했다. 군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친구나 내 제자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고 일병은 지난 19일 강원 고성의 소속 부대에서 경기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으로 치아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투신했다. 유족이 유품에서 찾은 휴대용 수첩에는 선임병 3명으로부터 멱살을 잡히거나 욕설을 듣는 등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훈련 도중 다쳐 앞니가 빠진 고 일병한테 선임병들은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으냐"고 폭언했다고 한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해당 부대 측은 투신 닷새 전 고충 상담에서 이런 사실을 보고받고 고 일병을 '배려병사'로 지정했지만 가해 병사들로부터 격리하지는 않았다. 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배려병사'를 혼자 타지 병원에 보낸 것도 부대 지휘관들의 안이한 대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 당국의 부적절한 사후 대처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1일 정연봉 육군참모차장이 주재한 '업무 점검회의' 자료에는 '유가족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함', '이슈화될 소지가 다분한 사안이었는데 선제 대응하지 못했음'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 군인권센터는 이 자료를 공개하고 "육군이 유족에 대한 사과나 진상규명보다 사건 은폐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육군은 "유가족 불편이 없도록 지원하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서 보면 군 당국의 사후 조치가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고 일병이 배속돼 있던 육군 22사단은 원래 사고가 잦기로 유명하다. 1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한 1984년의 조준희 일병 월북사건 외에도 2012년의 북한군 '노크귀순' 사건, 2015년의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 등이 모두 이 부대서 터졌다. 가깝게는 지난 1월에도 선임병의 가혹 행위에 시달리던 일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다 보니 장교, 사병 가릴 것 없이 모두 기피하는 부대가 됐다. 부대의 경계 범위가 너무 넓어 격무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사건·사고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말이 있다. 사정이 그렇다면 이 사단에 대해 특단의 조처를 해서라도 장병들의 복무 환경을 진작 개선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군 당국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 14일 취임사에서 "(장병) 본인들도 가고 싶고 부모들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병영문화 창조"를 국방개혁 과제로 제시했다. 송 장관은 취임 후 닷새 만에 터진 22사단의 사병 투신 사건을 어떻게 보고받고 어떤 조치를 지시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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