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달라진 전쟁 해석…유발 하라리의 전쟁문화사
'극한의 경험'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의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의 또 다른 책 '극한의 경험'이 번역돼 나왔다.
하라리가 2014년 '사피엔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인 2008년 펴낸 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자신을 전쟁역사학자로 소개하는 저자가 전공을 살려 15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전쟁을 해석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핀다.
저자는 참전한 이들의 경험담을 담은 전쟁 회고록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 '사람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에게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오늘날 대부분 전쟁 회고록들은 전쟁을 경험하면서 애국심과 영웅심, 전우애를 깨달았거나 심한 고통을 겪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중세부터 18세기 이전까지의 전쟁 회고록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전쟁 회고록에 흔히 등장하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말로는 묘사할 수 없다'라는 식의 표현도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지식이란 경험이 아닌 성경과 논리의 결합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변화가 나타난 것은 1740∼1865년 사이 시기다. 저자는 계몽주의와 감성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쟁을 어떤 깨달음의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과거와는 달리 육체를 정신의 우위에 두는 태도도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 서양 문명에서 나타난 '감수성 문화'는 육체적 경험을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원천으로 이해한다. '감수성×경험=지식'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런 공식 아래서 전쟁은 깊은 진리를 드러내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숭고한 경험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여행담의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세와 근대 초기에도 주인공이 여러 사람을 만나며 일련의 경험을 하는 여행담은 많았다. 그러나 이 시기 주인공은 여행하며 내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 자기 패기를 시험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이후 여행담은 주인공이 여행하면서 내적 변화를 겪는 과정에 이야기의 초점을 둔다. 체험과 이를 통한 성장은 근대 후기 의식 속에 이상으로 자리 잡게 됐고 전쟁을 바라보는 인식도 이런 분위기 속에 바뀌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문학과 철학, 미술, 종교, 역사 등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라리의 연구방식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옥당 펴냄. 김희주 옮김. 576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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